여성신문 953호에서 창간 19주년 인사를 드립니다.

내년 창간 20주년을 앞두고 있는 여성신문사에서는 20년 역사를 조명하는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그 과정에서 여성신문의 역사적 가치가 한국여성사를 이끌어간 소중한 빛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성신문의 씨앗은 1947년 미군정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독립운동가 김구 진영의 대표적 여성운동가인 황기성을 발행인으로 하는 <여성신문>은 한국 최초의 '여성신문'으로서 일간지를 표방하며 몇개월간 발행됐습니다. 발행인이 납북되면서 역사적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이 신문의 창간호는 비장한 목소리로 여성언론의 사명을 선포했습니다. "여성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형극의 신문도'를 가겠다"는 열정적 선언으로 말입니다. 이후 1985년 여성신문은 현대 여성운동의 모태가 된 '여성사회연구회'팀에 의해 <여성신문>으로 다시 태어났고, 이것이 발전되어 1988년 국민주 모금을 거쳐 주식회사 여성신문사의 주간 <여성신문>으로 창간,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19년 여성신문의 역사는 가부장제의 틀 아래서 왜곡되어 있던 여성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여성신문의 지면을 통해 억울한 여성들의 진실이 밝혀지고, 소외된 여성들의 인권이 회복되었으며, 여성들의 잠재성이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힘으로 자라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노도와 같은 여성운동의 물결은 역사를 바꾸었고, 이제는 성차별이니 양성평등이니 하는 말들이 오히려 진부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세상이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산업사회에는 공장을 소유한 철강산업의 카네기가 최고 부자였고, 정보화 사회에는 정보를 생산하는 빌 게이츠가 최고 부자였다면, 이제 우리 앞에 펼쳐지는 '이야기 사회'의 최고 부자는 '해리포터'라는 이야기를 생산해내는 여성작가 조앤 롤링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여성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왔던 여성언론 여성신문은 이제 이야기 사회의 주역이 될 여성들의 새로운 이야기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무척 늘어나고, 법·제도적 성차별이 사라졌으며, 여성들은 '과도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 듯하지만, 아직도 여성 자신의 이야기는 제대로 시작되지 않은 듯합니다.

정보화 사회를 넘어서는 첨단성과 함께 산업사회, 봉건주의적 잔재까지 한꺼번에 공존하는 한국 사회의 복잡다단한 특성은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데에 더 많은 장애물을 만들어놓고 있습니다. 여성의 희생을 미화하는 모성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억압적이고, 자유연애로 위장한 불륜 드라마는 기만적이며, 알파걸 또는 골드미스 등의 상업화된 담론은 공허하고, 거창한 구호 역시 여성들의 가슴을 채워주지 못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여성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가부장제 지배구조가 만들어낸 타자의 이야기이기에 여성들은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를 채워갈 여성 자신의 이야기는 어디에 있을까요?

새로운 여성 자신의 이야기 찾기. 이것은 앞으로 미래 여성운동의 과제인 동시에 19주년을 맞은 여성신문이 꼭 해내야 할 과제입니다. 여성 자신의 이야기 찾기는 어느 뛰어난 개인이나 소수의 이야기꾼의 전유물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 시대 여성들이 함께 만들어가야 할 공동의 작업입니다. 여성신문과 함께 새로운 여성 자신의 이야기 찾기에 동참해주십시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