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소리를 갖자" 여권운동 차원 첫 발행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에도 '여성신문'은 있었다.
미군정기인 1947년 4월20일 창간된 '여성신문'이 바로 주인공이다.
대표적 여성운동가 황기성이 창간
'여성신문'은 46년 5월12일 안중근 의사와 함께 활동했던 우익진영 여성운동가 출신의 우덕순을 발행인으로 해 창간됐다가 14호로 종간된 '부녀신문'의 발행권을 역시 우익진영 여성운동계의 핵심 인물인 황기성이 이어받아 되살려냈다. 영문명 'The Ladies' Daily'가 시사하듯 일간지를 지향해 창간됐으나, 창간 후 한달간은 거의 10일 간격으로 부정기적으로 발행됐다. 5월20일에 가서야 비로소 일간지 체제로 발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재는 47년 7월18일 68호까지만 정상적인 일간지 형태로 발행되다가 잠시 휴간된 후 7월27일 속간돼 8월15일 71호까지만 발행됐다는 기록이 '한국언론연표'에 남아있을 뿐이다.
이 '여성신문'의 진정한 가치는 '발행' 자체보다는 창간정신에 있다. 건국 과정에서의 여성의 적극적 참여, 여성의식의 계몽과 여성의 자질 향상, 여성 참정권으로 대변되는 여성 정치세력화, 그리고 여성운동과의 연장선상에서 창간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발간사 '여성신문을 내면서'에서 "오직 우리 여성 자신의 소리를 가져야겠다는 열의 일념에서 형극의 신문도를 밟은 것"이라고 천명했듯이 여성정론지로서의 사명감과 이에 따른 현실적인 제반 어려움 및 인고에 대해 창간 때부터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여성들 "나의 신문이 나오는 기쁨"
당시 일간지들처럼 흑백 타블로이드판 2면 세로쓰기 국한문 혼용으로 발행된 '여성신문'은 1면에는 통신사나 정치단체들의 입장 등을 담은 일반 시사 뉴스를, 2면에는 여성계 소식과 여성의식 계몽 관련 칼럼, 기획기사 등을 실었다.
우선 창간 초기 1면에는 이승만 박사의 "스승이 되고 벗이 되라", 하지 중장의 "최고(最高) 전형적(典型的) 공기(公器)가 되라"를 비롯한 우익진영 리더들의 축사가 실렸다. 이 중 '어부인 축사'로 따로 분류된 이승만 박사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나의 신문이 나오는 기쁨"은 여성대변지의 출현을 반기는 여성독자로서의 소박한 기쁨이 담겨 있어 정겹다.
2면에는 "적당한 성교육 방법은 젊은 남녀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 "불량소녀 단속에 노력"하겠다는 여자경찰서장의 취임 포부, "건국 위하여 글 배우자"란 제목 아래 "부끄러우나 문맹 여성이 92%" 등의 계몽성 기사가 눈에 자주 띈다. 그런가 하면 기획시리즈로 '부인문제'를 연재하면서 그 첫 순서로 "모성의 참다운 보호는 여성문제 해결의 중심이 된다"며 모성보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등 상당히 진전된 여성의식의 단면을 보여준다.
한복 차림에 힘차게 팔을 치켜든 여성을 로고로 한 독자논단 성격의 '여성의 소리'에는 "민주건국은 여성의 참획(參劃·계획에 참여함)으로", "남성의 봉건성 버리라", "남편의 성공 빌려 떠드는 여장부들", "간판과 결혼하지 말라", "남자에게 질 배 없다" 등 당시로서는 과격하게 느껴지는 제목들이 종종 등장했다. 생활지로서의 성격도 있어 "속이고 또 결혼한 남편", "결혼은 해야 할 터인데?" 등 여성상담코너 '어찌하리까', "밥이 쉬지 않게 하는 법" 등 생활상식코너 '가정메모' 등도 한쪽에 배치됐다.
무엇보다 지금의 여성의식이나 여성운동 아젠더와 비교해도 별로 뒤떨어지지 않는 여성주의적 관점이 관심을 끈다.
47년 5월21일자에서는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이 또 다른 절반인 남성에게 예속되어 있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여성해방적 선언을 했다. 따라서 참정권 허용, 직업을 가질 자유, 일과 가정의 양립, 남녀 임금·승진 차별 타파, 새로운 노동관 확립, 교육 평등기회 등을 일관되게 촉구했다. "직업을 생활보장의 방편으로 삼으면 비참하니 사명으로 느끼고 일로써 크게 성공하겠다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성숙한 직업관도 피력한다.
6월6일자 공창제 폐지를 촉구하는 건의문에서는 "공창제도는 부녀의 인격을 무시하고 여자의 정조를 일개 물품시한 노예 지향으로 봉건적 유물인 여성 모독의 패덕적인 악풍"이자 "자아 모독적 행위이며 정조매매의 비인간적 행위"로 그 본질을 파악하고 있다. 이같은 강한 주장 덕인지 47년 10월27일에 미군정법령 제7호 '공창폐지령'이 공포됐고, 48년 2월14일 발효됨으로써 공창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여성계몽· 정치견해 여론화
이같은 '여성신문'의 보도 태도에 대해 박용규 상지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미군정기 당시) 여성신문들이 여성운동에 대해 본격적인 주장을 한 경우는 거의 없었고, 여성 자질이 향상되면 자연히 남녀평등이 이루어진다는 내용만 있을 뿐 여성 억압구조에 대한 인식이나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한계를 지녔다"면서도 "다른 신문과 달리 '여성신문'은 독자투고란인 '여성의 소리'나 상담기사인 '어찌하리까' 등을 실어 여성신문다운 특성을 잘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이배용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는 '여성신문'을 비롯한 당시 여성매체들에 대해 "여성들 스스로가 여성만의 독자적인 언론기관을 확보하고, 그것을 통해 대중들에 대한 계몽과 함께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여론화시키고자 했다"(미군정기 여성 생활의 변모와 여성의식, '역사학보' 150집, 1996년)는 것에 큰 역사적 의미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