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김새가 운명을 결정한다(Shape is destiny)."

꼭 외모 지상주의로 성형열풍이 불고 있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외모에 많은 관심을 쏟으며 살고 있는 작금의 우리 사회를 풍자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이 말은 사실은 우리 몸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의 관계를 가장 정확히 표현한 것이다. 단백질은 생물체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구성 성분이며, 우리 몸에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대부분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다양한 생물체의 무수한 단백질들은 모두 20가지 아미노산의 여러 가지 조합으로 만들어지며, 어떤 조합으로 얼마나 길게 만들어지는가에 따라 수없이 다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단백질이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까.

우리의 몸 안에서 만들어진 각각의 단백질은 그 아미노산 조성에 따라 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에서 존재하기에 가장 안정한 구조로 자발적으로 꼬이거나 접혀져 개개인 우리의 얼굴만큼이나 다양한 생김새의 입체구조(3차 구조)를 만든다. 단백질은 이렇게 만들어진 입체구조, 즉 생김새에 따라 그에 적합한 생리적 기능을 수행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생명체를 유지하는 단백질의 기능이 각 단백질이 갖는 생김새에 좌우되므로 대부분의 새로 개발되는 의약품은 특정 단백질에 결합하여 그 생김새(입체구조)를 약간 변형시켜 기능을 항진시키거나 또는 기능을 억제하는 물질들이다. 실제로 요즘 잘 알려진 신약(新藥)인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Gleevec)이나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Viagra) 등도 세포의 신호전달에 관여하는 특정 단백질 각각에 결합하여 그 생김새의 변화를 유도함으로써 기능을 변화시키는 대표적인 약제들이다. 

그래서 신약 개발을 목표로 하는 제약회사들은 생명을 유지시키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하는 다양한 단백질의 입체구조 결정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단백질의 입체구조를 알아야 그 생김새를 변화시켜 기능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적합한 화합물인 신약을 디자인하거나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약들이 작용하는 원리를 이해하면 왜 약들이 때로 부작용을 일으키는가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얼굴이 모두 다르게 생겼어도 닮은 사람들이 있듯이 단백질도 모두 다른 생김새를 가지고 있지만 비슷하게 생긴 경우도 있어 개발된 약이 원래의 표적 단백질뿐 아니라 닮은 다른 단백질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한 하나의 단백질이 몸에서 여러 가지 기능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 약으로 표적 단백질의 한 가지 기능을 조절하게 되면 이 단백질이 수행하는 다른 기능에 원치 않는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때로는 운 좋게 이런 경우가 신약개발에 더 효율적으로 작용하여 A라는 용도로 개발된 약이 B의 증상에 더 효율적인 예도 있다. 실제로 비아그라의 경우 처음에는 고혈압과 심장병 치료제로 개발되었으나 이런 증상의 치료에는 별로 효과적이지 않은 대신 발기부전에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판명됐다.

생명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높이려는 신약개발의 노력은 원래 신이 만든 단백질의 생김새를 바꾸어 그 기능을 인간의 뜻대로 조절하고자 하는 인간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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