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족의 변화와 영화 속의 가족상 (上)

가족영화가 새로운 담론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1990년대 후반 IMF사태를 맞아 가부장 중심의 근대 핵가족 제도가 균열을 가져오면서부터다. '조용한 가족'(1998년, 김지운)에서는 가장 안전한 곳일 줄 알았던 가족이 폭력과 광기의 공간으로 변해간다. 여기서 가족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행태들은 한국의 폭력적 근대화의 또 다른 모습이다.

가부장의 위기로 인한 남성의 상실감은 90년대 후반 남성적 권위를 그리워하는 남성향수 영화의 경향으로 나타난다. '해피엔드'(1999년, 정지우)의 실직가장 민기(최민식)와 실질적인 가장 보라(전도연)는 전통적인 성역할이 전도된 부부. 보라를 불륜녀로 그리고 그에게 죽음이라는 처벌을 내리는 것은 성역할을 원래 위치로 되돌리려는 가부장적 무의식을 드러낸다.

또한 '반칙왕'(2000년, 김지운), '친구'(2001년, 곽경택), '박하사탕'(2000년, 이창동) 등에서도 남성들은 과거에 존재했던 남성성을, 그리고 남성을 구원해줄 추상화된 여성성을 갈구한다.

경제위기는 가부장 중심의 근대 핵가족제도에도 균열을 가져온다. '바람난 가족'(2003년, 임상수)은 가족의 붕괴와 가치관의 변화를 '바람'이라는 매개물을 통해 재현한다. 영화 속 여성들이 쿨하게 자기 삶을 찾는 반면, 남성들은 죽어가거나 부인에게 아웃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부계혈연 중심의 가족제도가 쇠락해가고 있음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가족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이 붕괴되면서 결혼율의 감소와 독신율·이혼율의 증가현상이 일어난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2년, 유하)는 '결혼할 나이가 되었으니 결혼한다'는 가치관이 쇠퇴하고 결혼연령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젊은이들의 현상을 표현한다. 특히 일부일처제 결혼제도의 허구성과 문제점을 폭로하는 회의적인 태도가 두드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