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il 30년이 제 젊음의 전부"

"나는 에쓰오일, 에쓰오일, 에쓰오일, 좋은 기름이니까~".
이젠 전 국민의 유행가가 돼버린 정유회사 S-Oil의 CM송이다. 이 회사는 CM송의 인기와 더불어 지난 2·4분기에는 3250억원의 영업이익과 3조619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좋은 기름'으로, '잘 나가는 회사의 기름'으로 최근 정유업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S-Oil의 성공비결은 무얼까.
전문가들은 S-Oil이 일찌감치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고부가가치 수출산업에 주력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와 합작을 통해 안정적인 원료 공급선을 확보하고, 내수산업으로만 인식돼온 정유산업을 경쟁력 있는 수출산업으로 탈바꿈시킨 것은 업계 최고의 성과로 평가받는다. 그 중심에는 S-Oil의 탄생부터 성공까지 30년의 역사를 함께 한 노연상 S-Oil 업무총괄 사장이 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노 사장을 만나 그간의 외길인생과 한국 에너지산업의 전망, 그리고 퇴임 후 계획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30년이란 긴 시간을 한 회사에서 보내고, 많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자리라 인정받음과 동시에 물러나게 된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하지만 좀더 다양한 것을 경험하지 못하고 한 우물만 판 것이 아쉬움으로 남기도 합니다. 앞으로 새로운 일, 좀더 생산적인 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할 겁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노연상 S-Oil 업무총괄 사장은 지난 30년을 이 한마디로 표현했다. "S-Oil의 30년 역사가 바로 제 젊음의 전부입니다."
1976년 S-Oil(당시 한이석유)이 설립될 당시 사번 '18번'으로 입사한 그는 해외사업본부장, 경영기획실장, 수석부사장 등을 거쳐 영업담당 사장, 업무총괄 사장의 자리에 올랐다. 평사원으로 입사해 실력만으로 당당히 경영자의 자리에까지 오른 것은 개인적으로 최고의 영광이었다. 특히 2차 오일쇼크와 정유시장 개방, IMF사태 등 국내외적으로 크고 작은 파고 속에서 이란, 사우디 등을 누비며 종횡무진 활약을 펼쳤다.
"S-Oil이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한 80년대 초반, 우리 회사는 내수공급이 유일한 목적이던 국내 정유산업에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었어요. 이란, 사우디 등 산유국과의 합작이 세계적 수준의 중질유분해탈황시설(BCC)을 가동하는 데 밑바탕이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정유산업을 고부가가치 수출산업으로 탈바꿈시켰죠."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오히려 기름을 해외로 수출한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남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것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불가능할 것만 같은 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S-Oil의 성공비결이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중동을 오가며 목숨을 위협받은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우리 회사가 처음 이란과 합작을 했을 때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했어요. 전쟁통에도 이란 출장을 자주 다녀와야 했는데, 당연히 전기나 수도 공급은 엉망이었고, 눈앞에서 엑소세 미사일이 왔다갔다 했죠. 사우디와 합작했을 때에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는 바람에 정세가 매우 불안했어요. 인명은 재천이라고, 나중엔 그런 상황을 즐기게 되더라고요."
덕분에 S-Oil은 세계 최대 산유국들과의 합작을 통해 안정적인 원료 공급선을 확보할 수 있었고, BCC 시설 건설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그 결과 현재 S-Oil의 BCC 시설 규모는 세계 최고로 평가받고 있으며, 매년 생산물량의 50% 이상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음악대학원 진학도 생각


이같은 눈부신 성공 뒤에는 음악을 좋아하고 와인을 즐기는 노 사장 특유의 문화적 감수성이 큰 역할을 했다.
"어려서부터 클래식 음악을 좋아해서 라디오를 항상 옆에 두고 살았어요. 하루는 제가 공부할 시간에 라디오를 듣고 있자 어머니가 라디오를 바닥에 내치신 적도 있어요. 얼마 전엔 음악대학원 진학도 진지하게 고려했답니다."(웃음) 
음악으로 인해 내면의 폭을 넓히고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음은 물론, 조직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수월했다고 그는 말했다. 이어 술을 잘 마시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경영자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법도 공개했다.
"술을 못마신다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그들과의 대화거리를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사람들이 가보지 못한 식당에 가거나 책을 가져가는 등 술을 대신해 내가 그들과 공유할 수 있는 '꺼리'를 찾았죠. 특히, 최근엔 '와인'에 대한 얘기가 큰 호응을 얻더라고요."
한번 관심을 가진 것은 자신의 지식으로 소화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탓에 이제는 클래식 박사, 와인 박사로 통하기까지 한다. 또한, 해외출장에서 돌아올 때마다 그 나라의 책을 몇권씩 사온다는 일화는 이미 많은 경영자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 있다.

석유수요 20년 이상은 갈것


현재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노 사장. 그가 예측하는 미래 한국의 에너지 산업은 어떤 모습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으로 20년 후에 석유가 고갈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문제를 유발하는 석유는 갈수록 용도가 줄어들긴 해도 그 수명이 20년보다는 오래갈 것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석유는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와 같은 좀더 가치 있는 일에 사용돼야 하고, 인류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너지 산업이든, 그 무엇이든 기존의 이용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난 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야 생산적인 발전이 뒤따를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퇴임 후 계획도 색다르다.
"퇴임 후에는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겁니다. 늦잠도 자고, 운동도 하고요. 특히 지금까지는 책을 통해, 라디오를 통해 지식과 음악을 받아들이는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글을 쓰고 제 생각을 남에게 얘기하는 등 밖으로 내뱉는 데 충실할 계획입니다."
끝으로 노 사장은 20대 초반의 딸을 둔 아버지답게 여성들의 사회 진출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기업의 임원으로서 면접을 해보면 여학생들이 너무 뛰어나요. 우리 회사의 전 사원이 여성이 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될 정도로 여성의 능력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여성 스스로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면 누구보다 훌륭한 사회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큰 조직 속에 묻혀 자신을 희생하는 것보다는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창의적인 인재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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