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지자체서 경쟁하듯 내실없는 축제 쏟아내
자연 즐기기보다 수입에만 열올리는 건 아닐까

얼마 전 학생들과 함께 경상남도 진주, 고성, 통영, 거제 지역으로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짙푸른 하늘과 바다를 실컷 보고 와서 올 가을을 넉넉히 버텨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문학기행이란 일반적인 관광이 아니어서 다녀오면 꼭 못마땅한 구석들이 남는다. 아니, 평론가라는 내 직업병이 늘 어떤 사물이나 현상들에 대해 비판적 거리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0월 초순의 가장 날씨 좋은 때라서인지 우리는 가는 곳마다 축제의 현장을 밟을 수 있었다. 출발일은 진주에서 유서 깊은 '개천예술제'가 시작되는 날이었고, 이미 진행 중인 '남강 유등축제'는 절정에 달해 있었다. 고성은 '소가야 문화제'가 끝난 직후였고, 통영에서는 '통영예술제'가 열리고 있었다. 거제도는 '거제시민의 날'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아마 이 지역뿐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전국 각지에서 온갖 축제들이 무성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름뿐인 축제', '내실 없는 축제'가 얼마나 많은지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진주에서는 적어도 축제다운 분위기를 느낄 수는 있었다. 어마어마한 인파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진주성 일원의 교통은 거의 마비상태였고, 남강 주변의 모텔들은 평소보다 비싼 값을 받았다. 남강 유등축제의 명성을 익히 들어온 터라 내심 기대가 컸는데, 대낮에 진주성에서 내려다본 남강은 참 어지러웠다. 강에는 엄청난 크기의 조악한 조형물들이 떠있어서 아름다운 강의 풍경을 제대로 즐기기 어려웠다. 밤이 되어 그 조형물들에 불이 들어와서 좀 그럴듯해 보이기는 했지만, 역시 그 크기에 대해서는 회의가 들었다. 더구나 일관된 개념도 없이 전래설화들을 소재로 한 조형물이 있는가 하면, 난데없이 자유의 여신상이나 트로이 목마가 나타나기도 했다. 강 양쪽에는 야시장 천막촌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강가를 걸으면서도 강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마 전국 각지의 축제를 누비는 상인들로부터 자릿세를 톡톡히 받았을 텐데, 학생들이 가장 기대했던 불꽃놀이는 10분도 안되어 끝나버렸다.

고성에서 만난 가야 고분은 그 규모도 대단하지만 고분군의 분위기가 너무나 편안해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편하게 무덤가에 누워버렸다. 탈박물관까지 잘 관람하고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탈박물관은 개천절 다음날이라고 휴관이어서 헛걸음을 했다. 홈페이지에는 분명히 월요일만 쉰다고 되어 있었는데….

통영의 청마문학관은 그나마 전화통화를 하던 중에 빨간 날 다음에 꼭 쉰다고 해서 미리 일정을 조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왜 그렇게 자주 쉬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통영예술제에는 어떤 행사들이 포함되어 있는지, 그냥 지나다니면서는 거의 알 수 없었다. 대표적 관광지인 남망산 공원에서도 별 정보를 접할 수 없었다. 시청 문화관광과에서 '윤이상 생가'나 '김춘수 생가' 등은 관람이 불가능하고, '윤이상 거리'도 명칭만 붙여져 있을 뿐 볼 게 없다고 미리 정보를 주어서 시간이나마 절약할 수 있었다. 청마문학관은 비교적 정리가 잘 되어 있었지만 높은 언덕 위에 있어서 장애우들은 관람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거제도는 '시민의 날' 개막에 맞춰 '선상 문학예술축제'가 있다기에 미리 문화관광과에 문의했는데 서너명이 전화를 서로 바꿔주면서도 그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어이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지역의 자연이 선사해준 감동 때문에 우리는 물론 최고의 문학기행을 즐겼지만, 허울뿐인 축제의 공허함과 문화유적지 관리의 허술함 때문에 씁쓸함이 남았다.

지역 축제의 단골 메뉴인 먹거리 장터와 트로트 가수들의 공연이 빠진다면 과연 무엇이 축제의 흥겨움을 제대로 선사해줄 수 있을 것인가. 독창적인 축제의 콘텐츠, 진정한 문화의 콘텐츠를 심각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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