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민주화 운동부터 위안부 고발까지
얼마나 더 희생해야 여성이 행복해질까

올해는 87년 항쟁 20주년이 되는 해다.

그때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87항쟁을 민주화의 열망에 태극기를 펼쳐들고 뛰던 청년의 모습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활동을 하면서 흔히 알려진 유명한 남성열사들 말고도 수 없이 많은 여성들이 역사에 함께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름 없이 죽어간 사람들, 그 많은 여성열사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오늘날을 맞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지난 13일 '2007 여성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제'를 준비했다.

유가족 인사로 나선 故 권희정 열사(96년 성신여대 재학시절 등록금 투쟁과 대선자금 공개 요구 운동을 벌이다 단식농성 후유증으로 사망)의 어머니이신 강순선씨는 처음에 "내가 여기 나와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고 자꾸만 사양을 했었다. 그러나 한번 말문이 트이자 열사의 초등학교 시절부터의 일화에서 시작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모든 일들과 소회를 한꺼번에 쏟아냈다.

"희정이는 24살까지 살았지만, 내가 100년까지 산다고 해도 우리 희정이의 100분의 1도 못쫓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아마 지금 살아있다면 여성운동을 하는 여러분들 사이에 섞여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을 것"이라는 어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어찌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전면화, 가속화되면서 여성들의 삶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지금도 이랜드와 기륭전자를 비롯한 산업현장에서 많은 여성들이 싸우고 있고, 또한 많은 분들이 세상을 뜨고 있다. 그 영전에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올라야 여성들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올해는 전북에서 활동한 여성농민 열사 故 김윤, 故 김학순·강덕경 할머니가 민족민주열사로 추천되어 새로이 명단에 올랐다. 1990년대 초 성폭력 피해자에게 오히려 '수치'를 강요하던 당시의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용기 있게 '위안부' 피해를 고발함으로써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물꼬를 튼 故 김학순 할머니. 수많은 그림을 남기고 떠나간 故 강덕경 할머니. 할머니는 떠났지만 지금도 할머니의 그림은 여전히 남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전쟁의 폭력성을 가르쳐주고 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외침,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위대성, 인간을 향한 다함 없는 사랑… . 모순과 질곡의 한반도를 살다 간 여성열사들을 기억하면서 여성으로서 이 땅에 산다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할지 다시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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