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요구…왜 '여성친화경영'인가

고급 여성인력의 비중이 큰 대기업이나 다국적기업을 중심으로 도입되고 있는 '가족친화경영' 또는 '워크 앤드 패밀리 밸런스'(work and family balance-일과 가정의 균형)는 넓은 의미에서 모두 여성친화경영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여성친화경영은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진출과 양성평등 의식의 제고 등 시대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기업 입장에서는 '여성친화적인 경영'을 펴야만 하는 시대적인 요구 및 당위성에 따른 선택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여성친화경영이 기업의 발전 및 경쟁력 제고와 깊은 상관관계를 맺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같은 흐름을 반영해 본지는 재계, 학계 등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여성친화경영에 대한 전반적인 견해를 묻는 질문지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에는 조동성 서울대 교수(경영대학), 이승신 전 소비자원장(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 김미경 W. Insights(여성 마케팅 및 컨설팅 전문) 대표, 황인경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인사조직팀)이 응해주었다.

이번 기획은 본지가 매년 시상해온 '좋은 기업 대상' 10주년을 맞이해 여성친화경영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자는 취지도 담고 있다.       

여성친화경영이라는 표현이 두루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도대체 여성친화경영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여성친화경영인가'라는 물음에 선뜻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 이번 질문지 조사 결과, 전문가들은 표현은 달라도 여성친화경영에 대해 대체로 비슷한 개념 정의를 내렸다.

먼저 이승신 전 소비자원장은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지 않는 평등적, 균형적인 경영을 뜻한다"면서 "여성이기에 불리한 조건(물리적, 신체적, 정신적으로)을 가지지 않도록 고려하는 경영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이 전 원장은 "하지만 여성 우위를 위한 경영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조동성 서울대 교수는 "기업조직의 상층부에서 여성의 위상과 역할을 높여 양성평등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답했다. 또 황인경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업무에 있어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 업무 외적인 측면 특히 가정사로 인한 불편요소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전문가들은 여성친화경영을 '기업이 남녀 인력을 활용하는 데 있어 동등하면서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고, 이를 위한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김미경 W. Insights 대표는 "'여성만을 위한 경영' 즉 수혜자를 여성에 한정짓는 듯한 인상을 줄 우려가 있어 기업에선 가족친화경영, 그보다는 최근에는 '워크 앤드 패밀리 밸런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김 대표는 "가족친화경영은 여성근로자뿐 아니라 남녀 근로자를 모두 포함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친화경영과 기업발전의 상관관계

전문가들은 여성친화경영의 주요 목표가 기업의 '여성인력 활용'에 있는 만큼 기업 발전 및 경쟁력 향상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비용을 증가시키고 생산성을 저해하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미경 대표는 "국내 대기업과 다국적기업 가운데 여성인력이 많은 곳에서 여성친화경영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면서 "기업 현장에서 여성친화경영은 근로시간 단축, 육아휴직 도입 등의 방식으로 실현이 되는데, 이것은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그러다보니 경영환경이 열악한 중소기업의 경우 여성친화경영을 도입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곳이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황인경 연구원은 "출산 및 육아지원 등을 하는 과정에서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비용이 증가할 것"이나 "장기적으로는 여성인력이 일하기 좋은 직장이라는 EVP(Employee value position)를 갖추게 됨으로써 우수한 여성인력을 확보하기가 더 쉬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조동성 교수는 "전 인구의 50%가 넘는 여성인력을 활용하지 못하면 기업의 경쟁력은 처음부터 연목구어(緣木求魚)"라고 전제하고 "국가 차원에서 보면 여성인력이 기업의 부가가치 창출활동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한 사람이 먹여살려야 하는 사람 수가 다른 나라보다 현격히 높아지고, 그 사람의 생산성에 관계없이 더 높은 보상을 줘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따라서 더 많은 여성인력을 기업 현장에 참여시키고, 이를 통해 1인당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실제 현장의 기업들은 여성친화경영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을까?

기업들은 대체적으로 여성친화경영이 기업 성과 및 생산성 향상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자료(가족친화경영 현황과 개선과제)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의 61.2%가 '가족친화경영이 기업 성과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그 반대로 '성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응답은 38.8%에 그쳤다.

기업 성과에 도움이 되는 이유로는 '종업원 만족도가 높아져 생산성이 올라간다'(60.8%)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이직률이 낮아져 안정적 인력운용 가능'(26.1%), '기업이미지 개선으로 판매 증가'(5.6%)의 순으로 나타났다. 독일 헤르티에 재단도 실증조사를 토대로 "가족친화 기업의 생산성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30%가량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힌 바 있다.

여성친화경영의 걸림돌은

전문가들은 여성친화경영의 도입 및 정착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로 '여성에 대한 보수적인 인식'을 대체적으로 꼽았다. 대부분의 여성친화적인 기업들이 구성원들의 마인드 변화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황인경 연구원은 "마인드라는 것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좀더 실질적인 사항들, 가시적인 업무환경 요소부터 우호적으로 바꾸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육아·탁아시설의 설치, 탄력적인 근무시간 적용 등 '워크 앤드 패밀리 밸런스'를 위한 각종 제도의 도입이 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황 연구원은 "여성들 또한 자기계발, 전문가적인 태도·인식 등을 갖춤으로써 스스로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미경 대표는 "여성친화경영이 여성의 짐을 덜어주는 대신에 남성에게 짐을 전가시킨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특히 기업 내 의사결정 라인에 위치한 차장급 이상 남성 관리자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