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정보의 해독이 알려준 비밀 (3)

인간을 비롯한 여러 생명체들의 '유전체 지도 작성사업'(human genome project)으로 유전체 전체의 염기서열이 발표되었을 때 유전자 수에 비해 인간 유전체가 너무나도 크다는 것에 놀랐다. 지난호 칼럼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의 유전체는 여백 없이 A, T, G, C 글자로 가득 채운 A4용지를 90m 이상 쌓아올린 정도의 정보인 31억개의 염기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유전자 수는 예상보다 훨씬 적은 2만5000개 정도였다. 

인간의 유전체 전체 염기쌍 중 실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기능을 수행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코드하는 부분은 전체의 1~1.5%에 불과하다. 즉, 인간은 실제 유전자 수에 비해 매우 큰 유전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다른 생물체와 비교해보면 더 명확해진다. 아주 작은 지렁이(꼬마 선충)의 유전자 수는 약 2만개로 인간 유전자 수에 근접하고 있으나, 그 유전체 전체 염기쌍의 개수는 약 1억개 정도로 인간 유전체의 3%에 불과하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진화가 많이 된 복잡한 고등 생물체로 갈수록 유전자 수에 비해 유전체의 크기가 커지는 현상이 관찰된다. 

진화과정에서 아무 유전자도 코드하지 않아 현재의 과학으로서는 아무 기능도 없어 보이는 유전체의 영역이 왜 고등 생명체로 갈수록 더 많아져 유전체 전체의 크기가 증가했을까. 생체가 매우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시스템인 것을 고려하면 복잡한 고등 생물체로 갈수록 기능도 불분명한 유전체의 크기가 매우 커진다는 사실은 더욱 더 의문점을 낳는다.

왜냐하면 유전체가 커질수록 각 세포가 가지고 있는 유전체 전체를 복사해 증식하는 데 있어 에너지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수십, 수백년 후 생명과학이 더욱 발전해서 유전자를 코드하지 않는 유전체 영역들이 수행하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새로운 기능이 밝혀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유전체의 구조 속에서 진화에 필요한 '여백'의 힘을 본다. 

복잡한 생물체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유전자 중 다양한 부분들이 헤쳐 모이고, 복제되고 재조합되어 새로운 기능의 유전자를 만드는 과정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유전자들의 재조합이 일어날 수 있는 장소, 즉 아무 유전자도 코드하지 않는 운동장 같은 특정 기능을 갖지 않은 공간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기능이 명확하지 않은 많은 여백을 갖는 유전체 구조는 고도의 발전과 진화를 위해서는 '빈 공간'이 반드시 필요함을 시사해준다. 이같은 생명구조는 우리 아이들의 교육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진정 우리의 아이들이 발전하는 데 있어 필요한 '여백'을 주고 있는 것일까. 세상을 사는 데 유리하다는 짧은 소견으로 단지 기능상 필요한 부분만으로 짜인 빡빡한 정형의 틀에 아이들을 가두어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럼으로써 좀더 창의적이고 기발한 새로운 발전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교육이 운동장 없는 학교나 공원 없는 도심 같은 숨 막히는 틀 속으로 아이들을 밀어넣고 것은 아닌지 가슴이 답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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