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정보의 해독이 알려준 비밀 (2)

지난 20여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해온 분자생물학의 지식과 2000년대를 전후해 완성된 유전체 지도 작성사업(human genome project)으로 놀랍게도 인간과 효모, 초파리, 꼬마선충, 쥐, 침팬지 등의 유전체 전체의 염기서열이 발표되었다. 이때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은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다른 생물체들이 가지고 있는 유전체들의 유사성이었다.  

예를 들면 빵이나 맥주를 만들 때 넣는 효모는 우리가 보통 생물체라고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데, 이 효모의 유전체에 의해 만들어지는 단백질 중 약 46%가 인간에게도 존재한다. 또한 크기가 1㎜인 꼬마선충의 유전체에 의해 만들어지는 전체 단백질의 43%, 우리가 즐겨 먹는 바나나 유전체에 의해 만들어지는 전체 단백질의 50%, 초파리 전체 단백질의 61%, 그리고 매운탕감으로 인기있는 복어 전체 단백질의 75%가 인간의 유전체에 의해 만들어지는 단백질과 매우 뚜렷한 유사성을 보인다.

즉, 겉보기에는 다른 생명체들이지만 적어도 유전자 수준에서는 생명현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메커니즘들이 진화하면서 그대로 보존되어 사용되고 있다. 지난 2005년 밝혀진 바에 따르면 진화상 인간과 가장 가깝게 인식되는 침팬지 유전체의 염기서열은 침팬지와 인간이 98% 정도의 유전정보를 공유하고 있음을 제시하였다. 침팬지와 인간의 차이는 전체 유전체에서 겨우 2%의 유전자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다른 생물체의 유전체를 구성하는 유전자들이 DNA 염기서열상으로만 유사한 것이 아니라, 그 기능도 매우 유사하게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생물체간에 유사성을 갖는 두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바꿔치기해도 기능이 그대로 유지된다. 쉽게 설명하면, 초파리나 효모에서 특정 유전자를 제거한 뒤 이 유전자와 유사성을 보이는 사람 유전자를 대신 집어넣어 주어도 제대로 기능을 수행해 생명이 유지된다. 이러한 다양한 생물체 종(種) 간의 유전체 수준에서의 유사성은 우리에게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물체들이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방법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인종, 외모, 능력 등 우리 눈에 매우 다르게 보이는 인간은 99.9% 이상의 동일한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다. 즉, 단 0.1% 미만의 유전정보 차이가 인간 사이의 다름을 만드는 이유인 것이다. 정말 '대동소이(大同小異)'란 이럴 때 써야 하는 단어가 아닌가 싶다. 또한 인간의 역사에서 반목과 전쟁 등의 원인을 제공했던 민족이나 인종의 차이를 유전자 서열로는 구분할 수 없다고 한다. 

전체 정보의 해독이 알려준 모든 생명체가 공유하는 유사성은 인간에게 겸손을 당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도 인간은 여전히 '만물의 영장'이라 믿으며 생태계를 마음대로 바꾸려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또한 근본적인 '같음'보다 미세한 '다름'에만 신경을 써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지 못하고 차별하고 미워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유전체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우리는 정말 '도토리 키 재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유전체  게놈. 한 세포 내의 DNA의 총합

* DNA  유전물질. 생명유지를 위한 모든 활동을 담당하는 단백질을 생성하는 설계도면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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