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치 상황 빚댄 '희극적 비극'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로 국내에서 브레히트에의 접근이 불가능했던 시절,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작품은 마치 이를 보상하듯 많이 공연됐었다. 로마가 게르만의 침략에 의해 멸망해갈 판국에 정치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양계와 역사 공부에만 열중하던 로마의 마지막 황제 이야기에 빗댄 '로물로스 대제'도 그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 강력한 제3제국이 멸망한 직후라는 시대상황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국가권력에 대한 패러디로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한국의 경우에도 이른바 개발독재에 몰두하던 시절이었던 만큼 관객들 중에는 이를 현실정치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듯하다.

그 '로물로스 대제'가 '정말, 부조리하군'(이윤택 번안·재구성/채윤일 연출)이란 제목으로  오랜만에 무대에 올랐다. 솔직히 말해서 이 공연이 '로물로스 대제'와 연관된다는 기초적인 정보도 없이 두 사람의 이름만 믿고 극장을 찾았다.

넓지 않은 무대를 침실 겸 서재, 또는 양계장으로 꾸며놓고 군마까지 등장시키면서 역사를 오가는 구성방식은 원작이 지향하는 '희극적 비극'을 실감시키기에 그리 부족해 보이지 않았다. '역사를 오갔다'는 표현은 원작이 서기 476년의 서로마제국을 배경으로 한 것에 비해 번안작은 21세기의 한국을 끼워넣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굳이 두드러지게 드러내지는 않고 있기는 해도 참여정부에 대한 패러디가 김정일을 패러디한 인물의 등장과 함께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해낸다.

'불의 가면-권력의 형식'이라는 공연을 통해 이미 호흡을 맞춰본 적이 있는 이윤택과 채윤일의 이번 만남은 그들이 표방하는 부조리성을 매개로 과히 어색하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객석에서는 이 공연이 주목하는 부조리성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헷갈려 하는 반응이 있었다.

가장 어리둥절한 것은 로물로스가 대변하는 무정부주의적 발상이 한국적 현실에서 누구에 해당하는지가 분명히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최고통치자를 연상할 수 있고, 대사들 중에는 이를 암시하는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예컨대 닭들을 애지중지하는 그의 모습을 이른바 코드인사와 연결시키기에는 어쩐지 거리가 있어 보인다. 다만 현재의 최고권력자를 무능하다고 보는 관점이 성립될 수 있다면 아마도 그와 같은 풍자가 어느 정도 먹혀듦직하지만, 과연 그것이 로물로스 대제같이 나름대로의 철학과 원칙으로 인한 것이라는 데 동의할 관객마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연극은 연극으로 보고 즐기면 그뿐이라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묘사들이 못마땅하겠지만, 작품 성격상 이와 같은 정치적 해석은 불가피하지 않을까?

이윤택은 참여정부가 시작할 즈음에 '인간 연산'이라는 국립극장 공연을 통해 권력의 생리에 대해 일종의 경종을 울린 바 있다. 이제 그 정권이 어떤 의미에서든 교체되어야 하는 시점에서 이번에는 풍자의 방식으로 이에 언급하고 있는 셈인데, 이번 공연은 '인간 연산'에 비해 그야말로 부조리한 상태에 머물고만 것이 아닌가 하는 감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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