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 노블의 가장 큰 특징은 게임과 애니메이션, 만화 등과 원 소스 멀티유스(one source multi-use) 원칙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라이트 노블이 게임이나 만화가 되기도 하고, 게임이나 만화가 다시 라이트 노블이 되기도 한다.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작안의 샤나', '머리 잘린 사이클-청색 서번트와 헛소리꾼(일명 헛소리 시리즈)', 'NHK에 어서오세요' 등이 만화나 애니로 제작됐다.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는 애니로 출발해 라이트 노블과 게임으로 제작됐고, '공의 경계'도 게임이 인기를 끌자 라이트 노블로 제작된 경우다.
이 때문에 장르에도 경계가 없다. 미스터리, 호러, 추리, 판타지, SF, 연애 등이 한 작품 안에 혼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작품성과 문학성도 상당한 수준이다. 최근에는 일반 소설가가 라이트 노블을 발간하기도 하고, 라이트 노블 출신의 소설가가 일본 최고의 소설문학상인 나오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올 가을 복잡한 고민들은 잠시 접어두고 만화처럼 재미있는 소설의 세계로 빠져보는 건 어떨까. 당신을 위해 라이트 노블 입문서 3권을 추천한다.
라이트 노블을 정확하게 표현한 문장이 이것 말고 또 있을까?
"평범한 인간에겐 관심 없습니다. 이 중에 우주인, 미래에서 온 사람, 초능력자가 있으면 저에게 오십시오. 이상!"
괴짜 여고생인 스즈미야 하루히는 평온한 세상이 너무 지루해서 'SOS단'이라는 정체불명의 동아리를 만든다. 친구들을 반강제로 납치해 부하로 삼았는데, 알고보니 아사히나 미쿠루는 미래인이었고, 나카토 유키는 우주인이었으며, 전학생 코이즈미 이츠키는 4차원의 초능력자였다. 그때부터 하루히 주변에선 소동이 끊이지 않는다.
라이트 노블 가운데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는 지금까지 9권이 발행됐다. 우울, 한숨, 무료, 소실, 폭주, 동요, 음모, 분개, 분열 등 권마다 붙인 제목도 재미있다. 이 소설의 묘미는 1인칭 화자에 있다. 남자주인공 쿈의 능청스럽고 딴죽 거는 듯한 삐딱한 말투가 1인칭 시점의 지루함을 싹 없애준다.
대학교 2학년 때 갑자기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사토 타츠히로는 그로부터 4년째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거대한 음모를 깨닫는다. 세계적 악의 비밀결사인 NHK의 존재를 알아챈 것이다. NHK의 정체는 바로 Nihon Hikikomori Kyokai(일본 히키코모리 협회).
'NHK에 어서오세요'에는 히키코모리뿐 아니라 우울증, 자살, 비관, 온라인게임 중독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등장한다. 너무 우울해질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적당히 무겁고, 적당히 가볍다. 관전 포인트는 현실적 묘사다. 작가인 타키모토 타츠히코 본인이 히키코모리 출신이어서 소설의 80%는 자전적 수필이라고 한다. 이 때문인지 에피소드보다는 인물들의 세세한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오츠이치는 심야에 동네를 조깅하는 것이 취미다. 낮에는 다른 사람의 눈에 띄어 부끄럽기 때문이다. 한밤중에도 부끄러운 것은 변함이 없어 앞에서 사람이 오면 근처 나무 사이로 몸을 숨긴다.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숨을 죽이고, 발견되지 않도록 마음 속으로 기도한다. 간혹 발견될 때는 쏜살같이 도망친다. 평소에 달려두길 잘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책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7월 발간된 공포단편소설 'ZOO'의 작가 이야기다. 읽을수록 머릿속에 영상이 떠올라 공포감을 더하고, 허를 찌르는 반전에 차마 다음 장을 넘기지 못하는 것은 아마 이런 작가의 폐쇄적인 삶이 작품 속에 그대로 투영됐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는 총 10편의 반짝거리는 이야기들이 수록돼 있다.
영화 '큐브'처럼 어느 날 갑자기 네모난 공간에 갇힌 어린 남매의 잔혹한 탈출기가 삶에 대한 본능을 일깨우더니(SEVEN ROOM), 서로 죽었다고 우기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연락책을 맡은 유치원생 꼬마의 기묘한 경험담에 일순간 머리가 멍해진다.(SO-far). 자신이 여자친구를 죽였으면서 몇달째 범인을 찾아 나서는가 하면(ZOO), 사람을 죽여 그 시체로 집을 만들어 사는 기괴한 남자도 등장한다.(차가운 숲의 하얀 집)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재미있어서다. 어떻게 이 많은 이야기를 이렇게 짧은 글 안에 담았을까 싶을 정도로 읽는 데 감칠맛이 있다.
직장인 송기원(31)씨는 요즘 와인의 재미에 폭 빠져 있다.
일주일에 두세번 여자친구와 유명한 와인 바를 찾아다니는 것은 물론, 최근에는 전문지식을 얻기 위해 와인잡지와 전문서적까지 챙겨보고 있다. 중소기업 영업사원인 그는 고객과 만날 때도 와인을 즐겨 마신다. 와인을 마시는 방법이나 유명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딱딱한 분위기가 어느새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만화 '신의 물방울'을 읽고 나서 생긴 변화들이다.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 와인 바람이 불면서 '신의 물방울'을 읽지 않으면 대화에 끼지도 못할 정도예요. 특히 여성동료들과 친해지려면 필수코스라고 해야죠. 만화책이라고 해도 전문서적 못지않은 방대한 정보를 담고 있어서 와인 입문서로도 손색이 없어요."
최근 32권으로 완간된 미술 전문만화 '갤러리 페이크(GALLERY FAKE)'도 연재 후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인기를 끌고 있다.
복제미술품 전문화랑 운영자인 주인공이 세계를 누비며 모네의 '볏집', 르누아르의 '목욕 후', 피카소의 '청색시대', 고흐의 '해바라기 연작' 등을 비롯해 모딜리아니, 미켈란젤로 등 유명 화가들의 이름난 작품 속에 담긴 미학적 의미와 그에 얽힌 사연을 다양한 스토리로 풀어낸다. 세계 고미술품에 대한 정교한 해설로 미술 애호가뿐 아니라 30~40대 일반인에게도 꾸준한 사랑을 얻고 있다.
이외에도 자동차와 이를 취재하는 카메라맨의 세계를 그린 '팩토리Z'(4권 완결), 초밥 명인들의 대결을 흥미진진하게 다룬 '키라라의 일'(13권 미완결), 클래식 음악과의 거리감을 좁혀주는 '노다메 칸타빌레'(17권 미완결), 국내 유일의 자전거 전문만화인 '내 파란 세이버'(10권 완결) 등도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