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은 너무 추상적이고 어려우므로 우리는 보통 생명 대신 생명을 지니고 있는 생명체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지구상에 생명체가 처음 생긴 것은 약 38억년 전의 일이고, 현재 수백만 종(種)의 생명체가 살고 있다. 또 인간이 아직 찾아내지 못한 것도 수십만 종이나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생명체가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종의 생명체로 환경에 적응해 그 생명을 유지시켜 왔음을 알려준다. 즉 생명체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이고, 또 그 다양성이 오랜 시간 극심한 변화를 겪었던 지구에서 생명체를 유지시켜온 힘이 되어온 것이다.

생명체 전체뿐 아니라 하나의 종이 지구에서 생존하고 번성하는가, 아니면 사라지는가도 그 종이 가지고 있는 유전정보의 다양성에 의존한다. 그래서 생명체가 고등동물로 진화하면서 그 유전정보의 다양성을 증대시킬 수 있는 유성생식(有性生殖)의 방법이 선택되었을 것으로 예측한다. 이런 다양성의 생물학적 중요성을 이해했다는 점에서 전통적으로 동성동본 간의 결혼을 금한 우리의 전통은 매우 합리적이고 과학적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호모 사피엔스라는 같은 종이지만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 중 똑같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며, 생명체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쉬운 예가 된다. 또 생김새뿐만 아니라 모두가 능력과 적성, 관심,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복잡한 사회가 제대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생명체의 다양성이 생명체를 유지시키는 힘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면 지난 십여년간 급속히 진행되었고,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측되는 '세계화(globalization)'의 추세는 두려움을 갖게 한다. 세계화는 경제적 이익과 효율을 중심으로 세계를 커다란 하나의 체제로 통합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획일화는 효율적일 수 있으나 다양성이 결여되어 있기에 위기가 닥쳤을 때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는 약점이 있다. 또한 지역, 민족, 국가로 오랜 기간 형성되어온 체제의 극심한 재편성을 수반하므로 많은 갈등의 이유가 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경제적 효율 중심의 세계화 추세를 거스르기도 어렵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해답은 생명체의 다양성에 있다. 생명체의 다양성이 다른 환경에서 종을 유지시키는 강점이 되는 것처럼, 인류의 다양성이 지구에서 인류의 생존을 유지시키는 궁극적인 힘의 원천임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인류가 각 지역과 환경에서 발전시켜온 다양성, 즉 문화와 생존방식의 '다름'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세계화의 보완이 절실히 필요하다. 세계화 안에 '지역화(localization)'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역화를 통해 우리가 다양성을 수용하는 관용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면 세상은 생명체인 우리 모두에게 조금은 더 살 만한 곳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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