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이웃된 외국인노동자들의 땀 결실
공공도서관에도 이런 코너들 많이 생겼으면

제일 먼저 생긴 건 '이슬람 음식점'이었다. 그리고 아시아 식료품점이, 한참 뒤에 베트남 음식점이 생겼다. 동네 시장 가는 길목에 우리 사회의 다민족, 다문화화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지도 몇해가 된다.

고객들은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하지만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색시가 운영하는 음식점에는 한국인 손님들이 제법 많다. 쌀국수나 넴(스프링롤)이 주 메뉴지만, 삼계탕 같은 한국음식도 낸다. 이따금 한국인 동서가 놀러 와서 팔 걷고 도와주기도 하더니, 얼마 전에는 목 좋고 더 넓은 곳으로 가게를 옮겼다.

이 골목에서 알록달록 아시아 여러 나라 글씨로 유리문을 장식한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작은 도서관을 발견했다. 이름도 '작은 도서관'이다.

휴일 오후 지나다보면 늘 닫혀 있던 이 도서관의 블로그를 우연찮게 인터넷에서 만났다. 게시글들도 적지 않았다. "이번에 동남아 여행을 갑니다. 책을 사다드리고 싶어요. 어떤 책이 좋을까요?" "티벳에 갑니다…." "필리핀에 갑니다…." 그렇게 도서관에 책을 사다 기증하고 싶다는 글들이 제일 많았다.

여름휴가 때 드디어 이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자원봉사 아주머니 한분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러 나라 책들이 유리문을 뺀 3면을 둘러싼 서가에 가득 차 있었고, 좁은 가게 안은 책 진열대 때문에 움직일 공간도 넉넉하지 않았다. 가끔 여행 다녀오면서 책을 구해다주시는 고마운 분들도 있다고 아주머니는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의 집을 운영하는 분을 만난 자리에서 작은 도서관 이야기를 했다. "그래요? 거기도 도서관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우리 노동자의 집에도 도서실이 있어요. 이용객이 제법 많지요."

민간단체들이 운영하는 이 터전들이 반갑기도 했지만, 공공도서관에 이런 코너가 생긴다면 어떨까 싶었다. 잠시 들른 로스앤젤레스의 어느 공공도서관 생각이 언뜻 났다. 우리 책과 DVD, 비디오들이 한쪽 코너를 차지하고 있었고, 스페인어 책과 영상물, 음반들은 더 많았다. '한국인과 히스패닉이 워낙 많은 도시니까' 하고 그때는 무심코 지나쳤다. 우리에게도 그런 코너가 필요한 때가 오고 있다는, 아니 왔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도서관을 운영하는 분들께 고마움과 함께 깨닫지 못한 자의 몫인 부끄러움을 느꼈다.

하긴 어디 도서관뿐이랴. 공존을 위한 필수조건들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한국 안의 인종차별을 염려하던 유엔의 권고안이 아니더라도 노력해야 할 상황이다.

이주노동자들이 이제는 오랜 이웃이 되었다면, 결혼이주여성들은 우리의 가족들이다. 이들의 다문화 가족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난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누군가는 말했었지. 우리는 이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자문해본다. '아이들의 엄마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물음도 함께 온다.

최근 들어 정부 각 부처나 지방자치단체의 관심이 높아져 예산지원이 예전보다 많아지긴 했어도 지속적 관심과 계획이 필요하다고 우리의 노동자의 집 소장은 말했다.

"국가가 종합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해요. 오늘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내일 어떤 일이 올지 몰라요." 남의 나라 일로만 여겨온 인종갈등, 문화충돌을 우리 안에서 키워서는 안된다는 원론에서 우리는 한시 바삐 벗어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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