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은 없다…영원한 현역으로 남겠다"
박영숙은 "공적인 어머니"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어른이 되었고, 이제 사회의 원로가 되었다. 난중(亂中)에 태어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크고 작은 일들을 이룩하며 민주역사의 산 증인이 되었다.
"이해하고 믿어주는 친구들 열 명은 족히 된다"
다른 이들보다 행운이 더 많았다고, 운이 더 좋았다고 표현하지만 오늘의 그는 역경과 고통, 실패와 좌절, 그리고 성공과 행운의 길고 긴 날들의 결과일 것이다.
그의 흥망성쇠를 함께 해준 가장 큰 은인은 남편 안병무이고, 그가 겸손하고 현실적이며 간절히 기도할 줄 아는 영적인 사람이 되게 해준 이는 아들이었다고 한다.
흥망성쇠를 함께 겪으며 인생의 중요한 스승이 되어준 남편이 있었고, 자신에게 진정한 어머니의 마음을 갖게 해준 자녀가 있었던 것이 인생의 축복이었다면, 그의 고난을 함께 울어주고 그의 성공을 함께 기뻐해준 벗들이 있었기에 그의 삶은 풍요로웠을 것이다.
박영숙은 말한다. "나는 지금도 나를 어떤 상황에서든 이해하고 믿어주는 친구들이 열명은 족히 된다"고.
자신에게 생명까지도 내어줄 수 있는 벗이 단 한명만이라도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는다.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살아나올 힘이 솟아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믿어주고 이해해주는 친구들이 있다고 확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신이 바로 친구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준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온 세상을 다 얻는다 해도 자신을 잃어버린다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씀처럼 온 세상을 다 얻는다 해도 자신을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는 벗이 없다면 그의 성공은 더 이상 빛이 아닐 것이다.
퇴직 후의 삶이야말로 덤이 아닌 진짜 삶이다
박영숙은 자신의 삶이 이제 황혼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인생의 마지막 여정을 걷는다고도 표현하지 않는다. "늘 현역으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에게 정치적 욕망이나 다른 사심들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부여된 내적 에너지를 끝까지 표출하려는 건강한 마음의 표현이다. 그는 자신과 자신의 연령에 다다른 이들의 삶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퇴직 후의 삶, 이것은 '남은 생'으로서 덤으로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그때부터 의무감이나 구속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보람을 찾아 내실 있는 '진짜 삶'을 사는 것이다…. 6070세대는 자원봉사의 길도 여의치 않은 오늘의 상황에서 자기가 자신을 고용하는 신업종들을 개발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이들 신업종의 종류가 다양할수록 이 사회가 더욱 기름지게 될 것은 분명하다. 이들이 지니고 있는 경륜과 지혜, 그리고 일하겠다는 의지는 이 나라의 버팀목이고 큰 자산이다."(국민일보 2004년 10월20일자)
그녀의 삶은 하나의 길로 이어져 왔다. 타인과 민족과 이 땅을 위한 사랑의 길로.
그가 해왔던 사회봉사활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민주화운동은 '우리'라는 이름으로 모인 사람과 자연과 생명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한없는 애정의 길이었다.
정치권을 떠난 후에 그는 환경운동을 제대로 하기 위해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 늦깎이 학생으로 입학했다. 62세 되던 해에 지구환경정책학을 공부하면서 호기심 많던 학창시절로 되돌아가 가슴 설레며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당시 남편 안병무가 와병 중이라 공부하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만 했는데 안병무 선생은 한사코 공부에 열중하기를 권했다고 한다.
"그는 마지막을 준비하면서 나의 미래에 대해서도 많은 준비를 해줬어요"라고 회고하는 그의 얼굴에는 애잔함이 스치고 지나갔다.
서민적인 우리시대 맏언니…"아직도 내 뇌는 젊다"
인생의 훌륭한 멘토를 동반자로 만난 것이 그의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멘토들의 멘토링에 귀 기울이고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이 바로 박영숙이 지닌 천부의 재능인 것 같다.
그는 요즘 블랙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여성재단으로 출근하며 여성활동가들을 위한 기금 모금운동에 한창 열중하고 있다. 여성들을 위해 '급전 SOS'를 운영할 계획이어서, 얼마 전 종료된 TV 드라마 '쩐의 전쟁'을 즐겨 보기도 했다고 한다. 김치와 김치찌개, 두부 요리를 좋아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텔레비전 드라마도 즐겨 보는 서민적인 그는 우리 시대의 맏언니이고, 비범함을 평범하게 펼쳐 보이는 이 땅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지적 호기심이 많았던 그녀는 여전히 공부를 좋아하고, 지적인 것들에 흥미를 많이 느끼는 노년기를 보내고 있다.
"얼마 전 목욕탕에서 정신을 잃고 넘어지는 바람에 머리를 조금 다쳐 병원에 가서 MRI 촬영을 했는데 이상이 없다는 말과 함께 '뇌가 젊다'는 너무 기분 좋은 말을 들었다"며 활짝 웃는 그는 시들 수 없는 현역 활동가다.
그는 세미나에 참여하여 다양한 이들이 녹여내는 지적 산물들, 창의적인 생각들을 나누고 듣는 것을 행복해 한다. "예전에는 세미나에 참석하면 120%로 활용했는데 요즘은 100%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어 안타까워요"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영란꽃 같은 미소가 번졌다.
'성인(聖人)이란 삶을 일관성 있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라틴어 격언이 있다. 일관성 있게 살아가는 것은 너무 쉽고 매우 평범해 보이지만, 일관성 있는 삶은 철저한 절제와 수련을 통해 이뤄지는 고도의 자기관리에서 나오는 열매다. 박영숙에게서는 일관성 있는 삶의 흐름이 느껴진다.
그에게 활동과 가정의 삶은 조화로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고, 열정적으로 지나왔던, 그리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그의 활동은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이라는 한 줄기 흐름으로 흘러간다. 그의 경력, 그의 인맥, 그리고 연륜에 녹아 있는 깊고 그윽한 삶이 우리네 후배들에게, 그리고 이 땅에서 태어나고 이 땅을 지켜나가는 많은 이들에게 싱그러운 힘이 되어주기를 희망한다.
<학력>
1955년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1959~61년 필리핀 Far Eastern 대학교 대학원 국제관계 수업
1965~66년 미국 YWCA 중견간사 과정 수료
1967~68년 호주 YWCA 중견간사 과정 수료
1991~92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최고 경영자 과정 수료
1993~94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객원 연구원 국제환경정책 연구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클레어홀 평생연구원
2001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CEO 환경경영과정 수료
<주요 경력>
1955~63년 한국YWCA 연합회 청년 Y-TEEN, 대학생부 간사
1959년 기독교 사회문제 연구회 감사
1963~69년 한국YWCA연합회 총무
1970~74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
1985~86년 아세아교회협의회 여성위원회 위원장
1987년 평화민주당 부총재, 88년 총재 권한대행
1988~92년 제13대 국회의원
1992년 유엔환경개발회의 한국위원회 공동대표, 사단법인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소장
1993~94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객원연구원으로 국제 환경정책 연구
1995~97년 녹색서울시민위원회 위원장, 98년 여성발전유공자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
1996~97년 녹색연합 대표
1998~2006년 대통령 자문 통일고문회의 고문
1998~2000년 (사)사랑의 친구들 총재
1999년 현재 재단법인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2000~02년 대통령 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
지속가능발전위원회 국제지역협력분과위 위원장
2002~03년 대통령 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
2005년 현재 (사)미래포럼 이사장
(사)희망포럼 공동대표
2007년 현재 (사)아시아교육원 이사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고문
<수상>
1990년 환경기자클럽 선정 <올해의 환경인상>
1992년 한국여성단체연합 선정 <올해의 여성상>
1998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
2000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선정 <김활란여성지도자상>
2001년 이화여자대학교 <자랑스런 이화인상>
2004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
2007년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로상
<참고자료>
- 우리의 길벗(2006년 7-8월 호)
- 박영숙 의정보고서, 민주당
- YWCA 80년사
- 여성신문, 1998. 7. 17
- 여성신문, 1998. 10.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