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믿음 구체화한 계약문서
사회를 이끄는 설계도이자 메시지
헌법의 진정한 생명력은 용기와 관용

정부 수립 선포일은 1948년 8월15일로 확정되었다. 대한민국은 정확하게 그날부터 출범하도록 예정되었다. 오랜 왕정의 역사를 계승하면서도 신생국으로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힘든 여정의 출발점에 서있었다. 모험을 위한 나침반과 지도가 준비된 것도 아니었다. 역사상 최초의 총선거가 실시된 것이 그 해 5월10일이었으니, 새로운 헌법을 마련해야 하는 시간은 3개월 남짓에 불과한 급박한 상황이었다.

국민들의 열망은 뜨거웠다. 새로운 국가의 모습을 만들고자 하는 헌법기초위원회는 국민의 바람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는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원안을 마련하던 유진오, 권승열 선생의 책상에는 경국대전에서부터 임시정부의 헌법전과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 미국 헌법에 이르는 다양한 자료들이 놓여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도 의원내각제냐 대통령제냐 하는 권력구조로부터 국유화, 농지개혁을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경제 원칙에까지 엄중한 정치적 결단을 요구받고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국민들의 관심은 식민지의 수모와 굴욕을 넘어서서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는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모습 그 자체에 쏠려 있었다.

1948년 7월 103개의 조문으로 제헌헌법이 탄생했을 때 국민들의 가슴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자부심으로 가득 찼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이란 전문(前文)으로 시작되는 헌법은 이렇게 태어났다. 그러나 헌법은 제정된 것만으로 완결된 것은 아니며, 계속되어 진화한다. 이러한 헌법의 본질은 약속이다. 함께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역할을 확인하고 그 실행을 다짐할 때 진정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 헌법은 이러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믿음을 구체화한 계약문서이다. 고대에는 계약의 이행을 담보하기 위하여 서로의 피로써 혈서를 작성하기도 하고, 이를 대신하여 동물을 잔혹하게 죽여 증거물로 이용하였다. 제물은 만일 계약을 위반하면 찢겨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두꺼운 헌법전을 통해서 진한 온기를 느낄 때 헌법은 분명 살아 숨쉬는 호흡을 전한다. 그것은 발췌 개헌, 4사5입 개헌, 3선 개헌, 유신헌법, 6·29 직선제 개헌 등의 질풍노도의 세월을 견뎌내며 분투한 선대들의 숨결이다. 그러기에 헌법의 역사를 통해 우리의 '어제'와 '오늘'은 연결되고 소통된다.

헌법이 그 생명력을 확장한다는 것은 가능성과 불안정성을 동시에 나타낸다. 사회의 변화라는 도전에 응전하는 헌법에는 이러한 가능성과 불안정성에 대한 균형이 필수적이다. 먼저, 사회 발전의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창조와 혁신을 통하여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경쟁'의 기반을 마련하여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경쟁을 촉진하는 시장경제의 확립을 위해서는 먼저 국민들에게 그러한 경쟁질서로 인도해주는 '보이는 손'으로서의 헌법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다른 한편, 사회갈등의 불안정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헌법은 각 계층의 각축과 경쟁에서 발생되는 부작용과 문제점을 치유하는 '공존'의 기반을 아울러 마련해야 한다. 헌법의 진정한 생명력은 쓰여진 성문의 헌법에서뿐만 아니라 헌법전 뒤에 숨겨진 우리 사회의 용기와 관용이라는 불문의 헌법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기업가의 창의적 혁신과 노동자의 생존권이 부딪치는 현장의 각축 속에서 헌법은 진화한다. 제헌을 기념하는 의의는 쓰라린 어제의 헌법 역사와 초라한 오늘의 헌법 현실을 넘어서 내일의 우리 사회의 방향을 이끄는 이정표로서, 또한 우리 사회를 건설하는 설계도로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아픔을 함께 해야 한다는 사랑과 용서의 담대한 메시지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헌법은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연결하는 소망의 약속으로 재탄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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