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환경운동의 대모 박영숙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4) 제도권에 진출한 여성·시민운동가
여성·환경운동의 대모 박영숙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4) 제도권에 진출한 여성·시민운동가
  • 김현옥 / 객원기자·작가 miriamkim@dreamwiz.net
  • 승인 2007.07.27 14:56
  • 수정 2007-07-2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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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빚진 자'로 희망의 정치 꿈꾸다

 

한화그룹으로부터 1억원의 지원금을 받아 마련된 여성노숙인을 위한 보금자리 ‘여성드롭인센터 우리들의 좋은집’ 개소식에서(2005년 3월 16일). 박영숙 이사장, 강경희 사무총장 등 관계자들과 함께 손봉숙 국회의원(민주당)이 참석했다.gabapentin generic for what http://lensbyluca.com/generic/for/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dosage for cialis site cialis prescription dosage
한화그룹으로부터 1억원의 지원금을 받아 마련된 여성노숙인을 위한 보금자리 ‘여성드롭인센터 우리들의 좋은집’ 개소식에서(2005년 3월 16일). 박영숙 이사장, 강경희 사무총장 등 관계자들과 함께 손봉숙 국회의원(민주당)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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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숙은 평생을 시민운동 한가운데서 운동가로 살아온 날들이 많은 사건들로 엮어진 긴 세월이었지만, 주어진 그리고 해야 할 일들에 비해 너무 짧은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시민운동, 인류의 보다 나은 미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채워지는 날들에 목표가 있을 수 없고 성패의 결과를 논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는 한국의 시민운동사를 돌아볼 때 여전히 많은 아쉬움을 느낀다.

청장년기를 보냈던 YWCA는 그가 활동하던 시절에 선배들에 의해 높은 목표와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어느 정도 자리잡고 있어 열정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한국 시민사회의 선구자이며 많은 여성운동가들을 배출한 YWCA의 공적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래도 80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성찰할 일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중산층 여성들을 위한 활동무대, 운동성은 약화되고 복지나 교육에 더 몰입하는 것 같은 활동들이 못다한 숙제처럼 가슴 한편에 남아있다고 한다.

 

2006년 5월 여성재단 캠페인의 일환으로 요식업체 (주)놀부에서 ‘딸들에게 희망을 주는 가게 28호’로 약정을 한 후 놀부음식점 앞에서 김순진 사장(오른쪽)과 함께 현판을 달고 있는 모습.
2006년 5월 여성재단 캠페인의 일환으로 요식업체 (주)놀부에서 ‘딸들에게 희망을 주는 가게 28호’로 약정을 한 후 놀부음식점 앞에서 김순진 사장(오른쪽)과 함께 현판을 달고 있는 모습.
중산층 여성 중심의 기존 여성단체 활동에 아쉬움

박영숙은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는 언변이 있었다. 그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세상의 시간들이 멈춰 있는 것 같고, 크고 작은 고민들이 제 갈 길을 찾아갈 것 같은 고운 희망이 스며든다. 어려서부터 말을 잘해 "이담에 국회의원 해라!"고 했던 주변 어른들의 말이 예언이 되어 그녀는 평생을 남에게 말하면서 사는 것 같다. 진솔하게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평온하고 긴 호흡으로 풀어가는 그의 식별력은 '공적 어머니'가 되고자 하는 그녀의 바람을 끊임없이 실현시켜주는 것 같다.

"한국 여성운동의 특성과 문제점이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중산층 중심의 운동이 많았고, 걸출한 여성활동가, 세계적인 여성인력을 키워내지 못한 것"이라고 그는 답한다.

축첩 반대, 가족법 개정, 혼인신고하기 운동 등에 YWCA는 앞장서서 여성들의 권익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했다. 사회학자 이효재 선생이 지적했던 대로 저소득층 여성, 근로자 여성, 소외된 사회계층의 여성들을 위한 활동들은 상대적으로 미흡했다. 그는 이효재 선생이 여성노동자들을 위해 운동하라고 강력하게 제안하고 YWCA를 탈퇴했던 사건을 기억한다.

여성운동은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이 본격화되면서 폭넓게 전개되어 나갔다.

단순한 여성 지위향상 운동에서 여성의 인간화, 가족을 감옥에 보낸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어머니들과 여성노동자들, 구속학생들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여성들이 겪는 고난에 합류하면서 더 민중적인 여성운동, 더 현실적인 여성운동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중산층 보수주의적 경향을 띤 여성운동에서 벗어나 민중적이고 현실적인 여성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민중신학자였던 안병무 박사가 1976년 민주구국선언사건 투옥으로 겪은 시련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박영숙은 "사회에 대해 빚진 자"로서 자신의 삶을 활짝 열어놓았다. 어느 곳으로 바람이 불든지 그 바람을 향해 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2007년 1월 11일, 여성재단이 드디어 사옥을 마련함으로써 박 이사장은 입주 기념식에서 감격적인 연설을 하게 된다.
2007년 1월 11일, 여성재단이 드디어 사옥을 마련함으로써 박 이사장은 입주 기념식에서 감격적인 연설을 하게 된다.
세계적 여성활동가 키우려 99년 여성재단 발족

한국의 여성운동은 진보와 보수라는 두 줄기로 흘러왔다.

계몽운동으로 시작된 보수적인 여성운동은 여성들의 삶을 사회화하는 데 공헌하면서 많은 분야에서 전문 여성인력을 양성하는 데 기여했지만 민주주의 투사, 민중적인 여성지도자, 민중여성들의 기반을 형성하는 데에는 역량이 미치지 못했다. 반면 진보적 여성운동은 민중지도자, 여성투사 등을 양성하고 민주화나 민중운동에 큰 몫을 해냈지만 여성들의 네트워크, 여성활동가들의 지속적인 무대를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중산·보수적인 여성운동 단체들은 회원 확보나 단체 유지에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관료화되기도 했거니와 여성네트워크에서 빠져나가기도 한다. 반면, 진보적인 성향을 띤 여성단체들은 활동인력의 부족, 열악한 재정상황 등으로 지속적인 공헌을 할 활동가들을 양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박영숙은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가 반세기가 넘지만 세계적인 여성활동가나 역량 있는 여성지도자들을 제대로 배출하지 못한 것은 여성단체들의 빈곤한 재정과 지속적인 인재 양성의 부재 등에 원인이 있다고 보았다.

세계적인 여성지도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제회의에 꾸준히 참석하는 것은 물론 국제기구에서도 활동을 해야 하는데, 여성단체들은 여기에 충분한 투자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개개인으로 볼 때 전문성이 높고 지혜롭고 열성적인 여성활동가가 많이 있었지만 그들을 지원할 만한 능력이 부족해 반세기가 지난 현재에도 여성인재들에 대한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여성재단은 그러한 어려움을 보완해 정당, 이념, 분야, 연령을 초월한 하나의 네트워크로 여성단체들이 서로 힘을 합하기 위해 1999년 12월6일 창립됐다. 사실, 이미 90년대 말 새천년을 구상하면서 여성 중진, 원로들은 후진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었다. 그들은 먼저 4000여개의 군소 여성단체들이 재정의 어려움을 겪는 현실을 성찰했다. 이어서 정파와 이념을 초월한 120여개의 여성단체들이 당시 영부인이었던 이희호 여사를 명예추진위원장으로 옹립하고, 각계 원로 58명이 공동추진위원장으로 추대되어 재단을 설립하였다.

여성재단은 성차별이 심한 한국 기부문화의 벽을 넘어 1000억원 기금 모으기 운동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모아진 기부금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 귀한 기부금들은 성경 속에 나오는 과부의 엽전 한닢처럼 여성단체와 여성활동가들을 위해 소중히 쓰이고 있어, 여성활동가들의 성장을 위한 디딤돌이 되고 있다.

 

2007년 4월 27일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의 여성희망캠페인 발대식. 박 이사장(앞줄 중앙)을 중심으로 이미경·홍미영 국회의원(열린우리당),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박현경 서울여성가족재단 대표, 안윤정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 김경오 한국여성항공협회 총재, 심영희 한양대 교수(사회학), 박옥희 문화세상 이프토피아 대표 등이 함께 했다.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sumatriptan patch sumatriptan patch sumatriptan patchwhat is the generic for bystolic   bystolic coupon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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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세력화된 여성정치활동 위해 정치권에 입문

정치인으로서의 세월은 짧았지만 그녀의 행보 모두는 정치인으로서의 삶이었다. 신뢰받는 시민활동가가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박영숙에게 정치인으로서의 입문은 그의 다른 모든 삶이 그렇듯이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여성운동이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을 때 여성운동에 대한 되돌아봄이 있었다.

"남성들의 정치가 힘의 게임이라면 여성들에게 정치란 삶의 조건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우리나라 인구 절반이 여성인데도 여성들은 자신들의 삶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구걸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축첩금지법, 혼인제도, 가족법, 영유아법 등이 삶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법인데도 불구하고 그 법을 만들기 위해 여성들은 동분서주하며 남성의원들을 설득했지만 법이 제정되기까지는 그야말로 험난한 여정이었습니다."

이런 여성활동가들의 현실에 대한 반성은 여성들이 제도권으로 진입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함을 깨닫게 해주었던 것이다. 물론 여성들이 개인적으로 정치활동에 참여하고는 있었지만, 개인이 아니라 여성단체가 대표를 파견할 수 있는 세력화된 정치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던 것이다.

이런 생각들과 새로운 정치흐름들이 맞물렸다. DJ(김대중)가 정책 중심의 정당인 평화민주당(평민당)을 창설하면서 한승헌(전 감사원장) 변호사를 통해 여성부총재 1명, 당 지도위원 2명, 당무위원 2명, 전문위원 1명 등 모두 7명의 여성활동가를 추천해달라는 전갈을 해왔다. 여성활동가들의 정치세력화가 절실하긴 했지만 한 당에 치우쳐 정치세력화를 이룬다는 의미는 아니었기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여성연합에서는 이런 제안에 고민하다가 평민당이 이제 막 출범했으니 진짜 정책정당으로 제대로 일하는지 살펴본 뒤 결정하기로 했다.

 

1987년 대선 당시 평민당 부총재로서 여의도에서 수많은 군중을 앞에 하고 선거 유세 강연을 했다.sumatriptan 100 mg sumatriptan 100 mg sumatriptan 100 mg
1987년 대선 당시 평민당 부총재로서 여의도에서 수많은 군중을 앞에 하고 선거 유세 강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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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가 평민당 창당하면서 과감히 여성부총재로 발탁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니 다른 날과 달리 평온한 내 얼굴을 보고 안 박사가 '잘 되었나보다' 하고 한마디 하는 거예요. 그래서 당장 결정하지 않고 평민당이 일하는 것을 보면서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고 하니 '여성들은 아직 멀었구먼'이라고 말하면서 나갔어요. 그 말뜻은 시작하는 과정부터 함께 하여 고난과 영광에 동고동락해야지 영광만 받으려 하면 될 것이 무어냐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았죠."

여성연합이 분명한 결정을 하지 않고 있는데, 동교동 쪽에서 박영숙을 부총재로 추대한다는 발표와 함께 기자회견을 한다고 언론에 보도됐다. 난감한 마음이 들었지만 정치에 일가견이 있는 이태영 박사에게 조언을 청한 박영숙에게 "30년 정치활동을 해야 부총재 자리 얻을 수 있는 건데, 부총재로 영입한다면 특혜지. 특혜!"라고 말하고는 "입당할 때 정장을 입고 가세요" 하더라는 것이다. 환경운동과 검소한 생활에 익숙한 박영숙은 안병무 교수가 은퇴식을 할 때도 블라우스에 치마를 입고 갔을 정도였다.

박영숙은 이태영 박사의 충고를 깊이 새겨듣고 마음을 굳혔다. 입당 전날 밤 정장이 없어 결혼 초에 입었던 정장 한벌을 밤새 수선하여 입고 나갔다. 기자회견과 함께 입당 예절을 갖추기 위해 동교동에 갔을 때 한국정치의 현실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새까만 양복을 입은 남자들의 세계!

박영숙에게는 낯설고 새로운 날들이 시작되었다. 자신이 맡은 직무가 얼마나 힘겨운 건지, 자신의 위치가 얼마나 주목받는 곳인지 가늠하지도 않고, 박영숙은 그저 어제와 같은 오늘을 맞으며 성실과 헌신으로 일관했다. 평민당 내 박영숙 부총재의 존재는 그리 곱지 않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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