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감성 정치 마케팅' 본격 시동
경선 한 달 앞두고 첫 자서전 출간…'비운의 삶' 강조

"나는 아버지의 피 묻은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빨면서 터져나오는 오열을 참을 수 없었다. 수술한다고 여기저기 찢어놓아 처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옷을 보고 있자니 굵은 눈물방울이 툭툭 떨어졌다. 몇년 전 어머니의 피 묻은 한복을 빨던 기억이 스쳐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지난 1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는 한동안 숙연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첫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위즈덤하우스)의 출판기념회를 맞아 상영된 영상 때문이다.

이 영상은 책에 실린 내용 중 '대통령의 딸'로 살며 겪은 학창시절의 에피소드와 육영수 여사의 장례식 당시 곁에서 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 퍼스트레이디 대행 시절의 고민들,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 피 묻은 와이셔츠를 빨면서 울던 때 등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사진과 애니메이션, 내레이션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영상 속의 '박근혜'는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꼿꼿하고 강인한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어머니 대신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해냈던 '당찬 여인'의 모습 대신,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까지 총탄으로 잃은 '비운의 여인'이라는 이미지가 한층 부각된 것이다. 대선주자로 나선 이후 스스로 이런 모습을 공식석상에서 내비치기는 처음이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한달여 앞두고 이같은 이미지를 부각시킨 배경에 대해 박 전 대표가 막판 승부수로 '감성 마케팅' 전략을 적극 활용키로 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측은지심과 눈물샘을 자극해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던 '군사독재 대통령의 딸'이라는 이미지를 상쇄시키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는 것.

이날 마지막 순서로 박 전 대표가 분양한 진돗개를 기르는 시민과 서강대 전자공학과 동창, 심장병 수술비를 지원받은 아기와 그 엄마, 미니홈피 500만번째 방문자 등을 초청해 '저자와의 대화' 시간을 마련한 것도 '친근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역시 이날 행사는 '대선주자표 출판기념회'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무대에 오른 박 전 대표는 자서전을 쓴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작년 5월 지방선거 지원유세 중 테러를 당해 가까스로 죽음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덤'으로 얻은 새로운 삶의 출발점에 서서 지난날을 담담히 기록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지난 1년간 이 책을 쓰면서 제가 국민 여러분을 위해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더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꿈꾸셨던 나라, 국민들이 진정 원하고 살고 싶은 선진국을 만드는 데 저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여기까지의 삶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국무총리를 지내고 현재 박 전 대표의 후원회장이자 캠프 자문단 좌장을 맡고 있는 남덕우 전 총리도 축사를 통해 "박 후보는 청와대에서 국가경영의 냉혹한 현실을 몸소 배웠고, 양친을 역사의 제물로 바쳐야 했다. 그러나 그 충격과 비통을 딛고 일어서 오늘까지 왔다"면서 "박 후보만이 이 나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운명의 여성"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참가자들은 행사 사이사이에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 규모가 무려 3000여명에 달했다. 행사장인 의원회관 대회의실을 넘어 회관 로비까지 인산인해를 이뤘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등 당 지도부와 홍사덕·안병훈 선거대책위원장 등 캠프 관계자, 현직의원 44명 등이 대거 참석했다. 이한동 전 국무총리 등 원로정치인은 물론, 불교·기독교계 인사들도 동석해 지지세를 과시했다. 특히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이명박 후보 측의 박희태 선거대책위원장과 주호영 비서실장, 이성권 수행실장도 참석해 눈길을 모았다. 이외에도 연기자 선우용녀·전원주, 가수 김수희, 새터민 출신 방송인 김혜영씨 등 연예계 인사 20여명의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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