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법 통과이후 경쟁률 더욱 높아져
수만명 청년들이 고시촌서 열정 소진
일종의 사회병리… 세계경쟁률에 역효과

'갈 길은 뻔한데 올인하는 사람들.' 다름 아닌 로스쿨 법 통과 이후의 사법고시생들이다. 가장 창조적인 능력이 뛰어난 시기에 한국의 젊은이들이 고시 준비에 몰두하면서 청춘을 불사르는 것도 안타까운 일인데, 로스쿨 법 통과로 고시열풍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유인 즉, 법대 저학년 학생들이 로스쿨로 눈을 돌리면서 사시 경쟁률이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낮아질 것이 예상되자 사시가 폐지되는 오는 2013년까지는 모든 걸 걸겠다는 고시생이 더 늘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우수한 젊은이들이 대학에 입학하기 무섭게 전공불문하고 취직시험에 몰두한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불안한 고용구조와 뒤틀린 사회구조를 생각하면 고시열풍은 일종의 사회병리현상이다. 더구나 이런 현상은 신조어를 만들어가며 더욱 퍼져나가고 있다. 옛날에는 고시라고 하면 행정고시, 사법고시 등을 말했다. 지금은 취업생이 선망하는 취직시험은 다 고시라고 부른다. 이른바 신(新)고시행렬이다. 방송·신문기자 등 언론인이 되기 위한 언론고시, 금융기관에 취직하기 위한 금융고시, 공무원이 되기 위한 공무원고시 등이 신(新)고시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용어인 '신이 내린 직장', '신도 모르는 직장', '신이 자기가 가려고 감추어놓은 직장' 등은 '신(神)고시'로 분류하기도 한다. 과연 이러한 고시열풍은 앞으로 어디까지 갈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과거를 돌아보면 미래가 보인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고시열풍과 유사한 것이 조선시대의 과거제도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직장을 구하는 데 가장 고려하는 것이 '돈' 즉 연봉이다. 최근에는 오래 안정적으로 근무할 직장을 찾다보니 고시열풍이 불긴 했지만 조선시대에 있어 최고의 가치는 '입신양명(立身揚名)'이었다. 혈통에 따라 권력과 사회적 특권이 보장되었던 당시 사회에서 과거제도는 시험만 잘 보면 한순간에 신분이 수직상승하는 파격적인 제도였다. 과거열풍이 부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서 조선시대 양반집 남자라면 누구나 과거에 도전했다. 심지어 한 집의 가장일지라도 마누라는 뼈 빠지게 일을 하고 자식이 끼니를 거를지라도 방안에 들어앉아 과거 준비에 열중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내용을 보면 최근의 우리 고시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요 과목이 강경(講經)과 제술(製述)이었는데, 제술과목에는 문학작품인 시(詩), 부(賦), 송(頌)과 논문인 책(策)이 있었다. 제술에서 주로 출제된 것이 시와 부였다. 과거에 붙기 위해서는 옛날 중국 대가들의 시와 문장을 달달 외우고 써야 했다. 정작 관료가 되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정력을 소진해야 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관료 엘리트들이 가장 창조적이고 성정이 풍부할 젊은 나이에 과거 문장 익히기에 정기를 빼앗겼다는 이야기이다.

현재 우리의 현실도 조선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수만명의 청년들이 고시촌뿐 아니라 대학의 친절한 뒷받침 아래 국민의 세금을 써가면서 고시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주요 국립 11개 대학과 서울 소재 사립 11개 대학)에 의하면 최근 3년간 이들 대학이 사법고시, 행정고시 등 학내 고시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고시반을 운영하면서 172억8000만원의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고시 준비생 1인당 국립대는 56만5000원, 사립대는 197만원을 사용한 셈이다. 더욱 더 큰 문제는 조선시대의 과거시험처럼 고시생들이 열풍까지 일으키며 시간을 쏟아붓는 고시 준비가 이들이 직장인이 되어 훌륭한 직장생활을 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06년 경쟁력 평가'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세계 4위에 달하나, 대학교육의 사회요구 부합도는 세계 50위이라고 한다. 무한경쟁시대에 대한민국이 살아남기 위해 유한한 인적·물적 자원을 과연 어디에 써야 할지, 심각히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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