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남편과 함께 미국의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갈 기회가 있었다. 흥미진진한 볼거리가 넘쳐 나는 그곳은 30대 후반이란 나이를 잊게 할 만큼 즐거운 놀잇거리로 하루 해가 모자랐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이 바로 ‘슈렉’ 체험관이었다.

상영이 끝나고 아쉬운 마음으로 ‘슈렉’ 체험관을 나오는데, 커다란 몸집의 녹색괴물 슈렉(사람이 들어가 있는 인형)이 어디에선가 나타나더니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내게 다가와 왈칵 끌어안는 게 아닌가. 기회는 이때다 싶어 뭇 아이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슈렉과 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을 액자에 넣어두고 요즘도 이따금씩 들여다보며 웃음 짓곤 한다.

영화 ‘슈렉’은 이렇게 특별한 추억이 담겨 있다. 하지만, 경제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영화 ‘슈렉’의 등장인물 중 피오나(Fiona) 공주에게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이 당연할 게다. 요즘 이 피오나 공주에 빗댄 ‘피오나 주부’란 용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영화 ‘슈렉’에서 마법에 걸린 피오나 공주는 낮에는 미녀로 살지만 밤에는 괴물로 살아가는데, 마케팅 업계에서는 전업주부이면서도 자아 정체성을 찾기 위한 활동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30~40대 주부층을 PIONA(personal identity obtained new auntie-자아 정체성이 확립된 새로운 아줌마) 주부로 부른다.

아침과 저녁엔 남편과 자녀 뒷바라지와 살림을 하다가, 낮에는 앞치마를 벗어 던지고 취미생활을 즐기며 각종 모임과 사회활동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우아한 공주’로 변신하는 30~40대 전업주부들이 일명 ‘피오나 주부’다. 이들은 취미생활이나 몸매 가꾸기 등에도 열심이지만 환경운동과 생활협동조합과 같은 사회활동에도 관심이 높다.

피오나 주부들은 또한 인터넷에서도 맹활약을 하고 있다. 2001년 31.2%에 불과했던 전업주부 인터넷 이용률이 지난해 71.2%로 급증했는데, 대졸 전업주부 중 인터넷 이용자는 93.2%나 된다. 이처럼 피오나 주부의 인터넷 파워가 커지자 이제는 피오나 주부들을 판매전략의 주 대상으로 삼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밤에는 괴물로, 날이 밝으면 아리따운 공주로 변신하는 피오나 공주처럼 피오나 주부들은 ‘아줌마(auntie) 파워’를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피오나 주부’ 열풍 탓에 ‘피곤한 주부’들이 늘고 있다. 집안일을 하면서도 자기계발을 게을리하지 않는, 능력 있는 주부 열풍(피오나 신드롬)이 불면서 모든 것을 완벽히 해내야 한다는 슈퍼우먼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주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피오나 주부 신드롬은 주부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슈퍼우먼형 여성상이 강조된 것뿐이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사실 그렇다. 앞치마를 두르고 집안일을 하는 주부가 왜 마법에 걸려 괴물의 모습인 밤의 피오나 공주에  비유되어야 하는가 말이다. 온갖 잡다한 집안일로 손에 물 마를 날 없는 주부의 모습이 진정 아름다운 피오나 공주의 모습이 아닐까. 행여 피오나 신드롬에 마음 편치 않은 주부가 있다면, 초여름 개봉된다는 ‘슈렉’ 3편을 보면서 그 간에 쌓인 스트레스를 말끔히 씻어내는 건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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