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학교’
일본서 차별받는 아이들
가슴 먹먹한 정체성 찾기
그런 조 감독이 재일 조총련 계통의 조선족 학교에서 다큐멘터리를 찍다가 세상을 떴다. 영화하는 사람들은 모두들 그를 이처럼 일찍 잃을 줄 몰랐기에 안타까워했다. 그가 만들던 영화에서 촬영을 맡았던 조 감독의 남편이 감독이 되어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고 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우리학교’의 김명준 감독께 실례가 될지 모른다고 염려하면서도 나는 이렇게 시작하고야 만다. 내게 있어서 ‘우리학교’는 그 짧은 개인사가 중요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우리학교’는 충격이었다. 이 학교의 존재를 나는 상식 수준에서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한복을 입고 다니는 이 학교 여학생들이 일본 우익들의 공격 대상이 된다는 소식을 북한과 일본의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우리는 언론 뉴스를 통해 들었다. 이 학교를 졸업한 예술가들, 지식인들을 만날 기회도 있었다. 학교가 일본 사회에서 겪는 차별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 귀동냥을 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충격적이었다는 건 다큐멘터리가 그런 상식들을 뒤집었다는 뜻이 아니다. 영화는 일반적 지식과 정보를 넘어선 ‘무엇’을 가슴 한복판에 불쑥 던져놓았다.
아이들이 일본 땅에 있다.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거기 살고, 아이들 하나하나가 그곳으로 흘러들어야 했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지고 온 역사의 짐을 물려받았다. 짐이 너무 무거워 보이건만 아이들은 말한다.
우리 옷을 왜 구태여 고집하느냐. 우리가 조선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의 존재가 묻혀버릴 수 있기 때문에. 헌데 왜 여학생만 우리 옷을 입어야 하지?(웃음)
학교는 일본 사회에서 이질적 집단으로 차별의 위협에 노출되어 자기부정을 하기 십상인 아이들에게 정체성과 자긍심을 심어주는 치유의 장소가 된다. 수업과 체육대회, 합창대회와 기숙사 생활, 축구대회와 입학, 졸업식 등 학교의 365일을 함께 하는 카메라는 교육이 아이들을 단련시키는 과정을 과장 없이 드러낸다.
아이들과 학교의 일상은 말 그대로 밝고 씩씩하다. 그런데 객석에 앉아있는 관객으로서 나는 이 건강한 집단 성장기에 느닷없이 눈물을 쏟곤 한다. 이 아이들이 학교 밖에서 치러야 했던, 또는 치러야 할 문화적·정치적 투쟁을 상상한 탓이다.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정체성’을 확보해야만 하는 아이들의 지정학적 위치 자체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곤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고등학교 과정 때 북한 방문을 한차례 한다(최근 일본의 대북한정책이 경화되며 어려워졌다지만). 물론 감독은 동행하지 못한다. 대신 학생에게 카메라를 주고 촬영을 맡긴다. 만경봉호를 타고 북으로 향하던 아이들과 돌아온 아이들은 어딘가 달라졌다. 밝아졌고, 열에 들뜬 듯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화가 일상이자 주류로 통용되는 곳, 고향을 발견한 것이리라. 아이들의 ‘조국 사랑’은 이념이라기보다 문화적 자기 확인의 분출이다.
영화 ‘우리학교’는 그렇게 현해탄 건너 ‘우리학교’ 속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그곳은 언어로, 이식된 지식으로 이해하던 학교가 아니라 살아있는 아이들의 학교, 아이들에게 긍정의 태도를 길러주는 교사들의 학교다.
‘우리학교’가 관객 숫자를 주일마다 크게 늘려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