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부인들]
90도 인사·스킨십 대단 정적도 돌아서게 하는 ‘야생화’
어릴적부터 독실한 기독교인…대선때 일요일 유세 중단시키기도
베이징 세계여성회의 참가…여성계와 교류 거의 없고 공식 역할만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유엔 세계여성회의에 참석한 손명순 여사가 당시 리펑 중국 총리와 환담을 나누는 모습.영부인이 유엔 여성회의에 참석한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초반  여성회의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국내 언론사들은 앞 다투어 여기자단을 현지에 파견했고, 여성회의 기간 중 관련 기사들이 연일 주요 지면을 장식했다. 이후 손 여사가 여성계와의 교류나 여성 관련 문제에 특별한 관심이나 활동을 보이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회의 참석 자체만으로도 세계적 여성 이슈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은 톡톡히 했다.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유엔 세계여성회의에 참석한 손명순 여사가 당시 리펑 중국 총리와 환담을 나누는 모습.
영부인이 유엔 여성회의에 참석한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초반 여성회의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국내 언론사들은 앞 다투어 여기자단을 현지에 파견했고, 여성회의 기간 중 관련 기사들이 연일 주요 지면을 장식했다. 이후 손 여사가 여성계와의 교류나 여성 관련 문제에 특별한 관심이나 활동을 보이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회의 참석 자체만으로도 세계적 여성 이슈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은 톡톡히 했다. ⓒ국가기록원
만난지 한 달 만에 결혼

기혼임에도 무사히 졸업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부인들 중 이화여대 재학 중 결혼한 영부인은 이순자, 손명순 여사 둘이다. 이 여사는 기혼자의 재학 금지 학칙에 따라 결혼과 동시에 자퇴한 반면, 손 여사는 약대 3학년 때 결혼했지만 운좋게, 그리고 주변의 배려로 무사히 졸업했다. 당시는 6·25전쟁 중이라 학사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뒤늦게 알려졌지만 약학대 학과장이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묵인해줬다고 한다.

손 여사는 YS를 만난 지 한달 후인 1951년 3월6일 경남 마산 문창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서울대 철학과 4학년이었던 YS는 ‘할아버지 위독’이라는 거짓 전보를 받고 급히 고향으로 내려갔고, 이때 손 여사를 만나 맞선 본 지 한달 만에 결혼에 골인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권양숙 여사와 초등학교 동창

 

손 여사는 1929년 2월25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신용리에서 아버지 손상호씨와 어머니 감덕순씨의 2남7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부친은 종업원만 800여명을 거느린 경향고무 사장으로 자수성가한 마산의 재벌이었다. 손 여사는 진영공립보통학교(1996년 진영대창초등학교로 교명 변경), 마산여중과 마산여고를 거쳐 이화여대 약대를 수석 입학했다. 손 여사와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는 초등학교 동창생이다.

손 여사의 일대기를 그린 책 <당신은 나무요 나는 흙입니다>(김태수 지음)에 의하면 손 여사는 총명하고 얌전한 인성이 좋은 여성이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기독교 신앙이 돈독했던 손 여사는 대학시절에는 이른 새벽 뒷산 기도장에 올라가 물 떠놓고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친구 장욱희의 증언에 따르면 손 여사는 성경시간이 있고, 김활란 박사를 만날 수 있었던 대학시절을 일생 중 가장 행복한 때로 여겼다고 한다. 이러한 손 여사의 신앙은 1987년 대선 때 YS의 일요일 유세를 중단시키기까지 했다.

YS 대선 일등공신 손명순의 90도 인사법

측근들에 따르면 손 여사는 YS 대권가도의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손 여사는 YS가 신한국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후에는 사당동에 별도 사무실을 차리고 선거운동에 나섰다. 1987년 대선 당시 남편의 일요일 유세를 포기시킬 만큼 독실한 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92년 대선에서는 본인이 직접 전국 유명 사찰과 유력 종단을 빠짐없이 방문했다. 정병국 의원에 따르면 “당시 손 여사는 하루에 평균 3~4곳, 전국 498곳의 사찰을 다녔다”고 한다. 또한 손 여사는 고개를 90도로 숙이고 “부탁합니다”라고 말하며 전국을 3회 순회했다. ‘90도 인사법’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당시 만나는 사람들과 1대 1로 찍은 사진만 해도 1만장. 손 여사는 “없는 거지도 한 표고, 부자도 한 표다. 정치를 한다면서 어떻게 제 마음에 드는 사람하고만 만날 수 있느냐”라며 어디든 가리지 않고 돌아다녔다.

손 여사 사람관리비법은 스킨십과 상도동 시래기국 

손 여사의 사람관리 비결은 ‘끊임없는 스킨십’으로 알려졌다. 92년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 때 민정계 인사 집을 찾아다녔는데, 당시 손 여사의 방문을 받았던 청와대 수석 출신 모 민정계 의원은 “손 여사가 직접 집으로 찾아와 지지를 부탁하는 바람에 마음이 YS로 기울었다”고 고백했다.

학창시절부터 ‘대통령의 꿈’을 꾸고 살아온 남편을 둔 손 여사의 내조법은 첫째는 가난을 참는 것, 둘째는 남편에게 용기를 주는 것, 그리고 셋째는 집에 찾아온 사람에게 기꺼이 밥 한 그릇 내오는 일이었다고 한다. 측근이나 기자들은 상도동 집에 가면 언제든 시래기국에 갈치 한 토막을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손 여사는 특히 조직에서 소외감을 느낄 것 같은 사람들을 다독거렸다고 한다. 정옥순 전 의원에 따르면 ‘대통령이 된 후 YS에게 서운함을 느꼈던 과거 민주화 동지들도 손 여사 때문에 참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YS 성격상 정적이 많은데 정적들의 독기를 뺀 것이 손 여사인 것이다. 정병국 의원은 3당 합당시 최형우 전 의원이 죽어도 안 따라간다고 할 때 이를 설득한 것도 손 여사였다고 말한다.

 

 

베이징 제4회 세계여성회의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영부인으로서 기조 연설을 하는 손명순 여사.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베이징 제4회 세계여성회의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영부인으로서 기조 연설을 하는 손명순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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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10여 종 일간신문 정독에 독자투고란까지 챙겨

YS 재임시절 손 여사의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신문 보는 일이었다. 10여종의 일간신문을 정독해 언론에 비친 남편의 모습을 모니터했고, 독자투고란까지 꼼꼼히 읽었다.

손 여사가 모 신문 독자투고란에서 강원도 평창의 묘목시험장 야생화가 썩어간다는 기사를 보고, 청와대 조경을 야생화로 바꾸기로 하고 직원들과 함께 직접 야생화를 심었다. 이렇게 청와대가 야생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그 관심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은방울, 둥굴레, 금낭화, 매발톱, 노루오줌 등등. 당시 청와대에는 손 여사만큼 한국 야생화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손 여사는 야생화 전문가였다.

손 여사는 청와대 안살림을 소위 ‘상도동 스타일’로 바꾸었다. 그녀는 커튼, 식기 등 청와대 집기들을 전임 대통령 부부들이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아무 것도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대신 이전에 없던 청와대 수행원과 운전기사들을 위한 구내식당과 여직원을 위한 휴게실을 새로 만들었다. 한편 청와대 식단 메뉴는 칼국수, 설렁탕, 갈비탕, 비빔밥 등으로 간소화시켰다.

옷 라벨도 떼고 입어…‘안방로비’ 불가능

손 여사는 40여년 야당 정치인 아내 생활을 끝내고 65살 때인 93년 2월25일, 대통령 영부인이 되었다. 영부인이 된 후 적극적 역할이 기대되었으나 손 여사는 의례적이고 공식적 역할만 수행했다.

그녀는 여성 역할과 지위향상이 활발해지던 90년대, 시대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성계와 교류를 거의 갖지 않았다. 95년 베이징 세계여성회의에 역대 대통령 영부인 중 최초로 단독 참가한 게 가장 두드러진 활동이다. 이 당시 힐러리 여사를 만나기도 했다.

손 여사는 재임 중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 부인들을 자주 만나지도 않았고, 청와대 면회실로 이들이 보내온 선물은 대부분 다시 돌려보냈다. 손 여사는 자신이 입는 옷의 라벨도 떼고 입었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김용태 전 의원에 따르면, 손 여사는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의 부인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식사하는 의례적인 모임도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손 여사를 통한 안방 로비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는 손 여사의 스타일이기도 했지만 ‘부인의 참견을 허용하지 않는’ YS 스타일이 더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문민정부 시절 손 여사의 친정쪽은 거의 활동하지 않고 지냈다. YS가 유독 처가쪽에 엄격했기 때문이다. 손 여사의 사촌동생인 손주환 전 정무수석의 등용이 거의 유일하다. 93년 초등학교 교사인 YS 처남 손은배씨는 교총 회장 후보 출마를 시도했으나 좌절됐다.

손명순 여사 일대기

1929년 2월 25일, ‘경향고무’라는 고무신 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손상호 씨와 어머니 감덕순 씨 사이에 2남 7녀 중 장녀로 경남 김해시 진영읍 신용리에서 출생

1949년 이화여대 약대 수석으로 입학

1951년 2월 초, 중매로 김영삼 전 대통령(당시 서울대 철학과 4학년)이 집으로 찾아와 첫 만남

 3월 6일, 경남 마산 문창교회에서 결혼

 여름, 부산 토성동에 신접살림 차리고 대학공부 계속함

1952년 첫째 딸, 혜영 씨 출산

1954년 5월 20일, 남편 김영삼 씨, 제3대 국회의원 선거(거제)에서 최연소(만 26세) 국회의원으로 당선

1959년 3월 8일, 둘째 아들, 현철 씨 출산

1960년 7월 29일, 김 의원, 제5대 국회의원 선거(부산 서갑구)에서 당선(2선)

1963년 11월 26일, 김 의원, 제6대 국회의원 선거(부산 서구)에서 당선(3선)

1967년 6월 8일, 김 의원, 제7대 국회의원 선거(부산 서구)에서 당선(4선)

1971년 5월 25일, 김 의원, 제8대 국회의원 선거(부산 서구)에서 당선(5선)

1973년 2월 27일, 김 의원, 제9대 국회의원 선거(부산 서동구)에서 당선(6선)

1974년 8월 22일, 김 의원,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최연소 야당총재(만 46세)로 선출

1978년 12월 12일, 김 의원, 제10대 국회의원 선거(부산 동서구)에서 당선(7선)

1982년 10월 17일, 장남 은철 씨 결혼식에 손명순 여사 혼자 참석

1987년 5월 1일, 김영삼 씨, 통일민주당 창당, 총재에 취임

1988년 4월 26일, 김 총재,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부산 서구)에서 당선(8선)

1992년 3월 24일, 김 총재,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국구로 당선(9선)

1993년 2월 25일, 남편 김 총재가 제14대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우리나라 7번 째 영부인이 됨

1995년 9월, 베이징 제4차 유엔세계여성회의 참석

1997년 12월, 김영삼 정부, 외환위기(통화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 신청

1998년 2월 25일, 김대중 씨, 제15대 대통령에 취임

참고문헌

도서

- 대통령가의 사람들, 오경환, 도리, 2003

- 영부인론, 함성득, 나남출판, 2001

- 김영삼 회고록, 김영삼, 백산서당, 2000

- 당신은 나무요 나는 흙입니다, 김태수, 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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