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편(3)

‘베일속’영부인‘베갯속’영향력 대단
비자금 사건으로 이미지 먹칠
침묵으로 일관 대외활동 꺼려

역대 영부인들 중 김옥숙 여사만큼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영부인도 없다. 김 여사는 재임 중 당 한건의 인터뷰도 하지 않았다. ‘그림자 내조’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역대 영부인들 중 어록이 없는 유일한 이로 꼽힌다. 이런 점 때문에 김 여사는 영부인이 신경 써야 할 사회문제를 도외시한다는 여성운동가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으며, 학자들로부터는 영부인의 공적 역할과 비중을 축소시켰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영부인론을 쓴 함성득 교수는 김 여사를 ‘베갯속 영향력’(Pillow Influence)의 영부인으로 분류했다. 베갯속 영향력은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적으로 볼 때는 어느 다른 영향력 발휘 수단보다 막강하다. 공정하고 바른 방향으로 행사되지 않으면 대통령 개인과 나라 전체에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게 되는 취약성을 지닌다. 

김 여사는 경북사대에 입학한 어느 정도 수준의 교육을 받은 지적 여성이다. 5공화국 7년 동안 2인자였던 남편의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 개입하면서 간접적인 정치경험을 했다. 겉과는 달리 비공식적으로는 5공 청산, 국회의원 공천, 인사, 후계구도 등 정치적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여사는 최근 와병중인 남편의 병구완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역대 대통령들은 수명이 길고, 또 건강한 노년을 보낸다. 그러나 올해 75세라는 비교적 젊은(?) 노 전 대통령이 병상에 눕게 된 것은 스트레스 때문이 아닌가 한다. 5공 치하에서는 권력을 계승하기 위해 친구의 눈치를 살펴야 했고, 권력을 잡자 초반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후반에는 후계자인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마음고생을 했다. 퇴임 후에는 비자금 사건으로 ‘부패 대통령’의 오명을 쓰고 감방생활을 했다. 그 속앓이가 병이 되어 일찍 자리에 누운 것이다. 김 여사는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한 채 대외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김 여사는 수천억원대에 달하는 노태우 비자금 사건만 아니었으면 비교적 좋은 이미지의 영부인으로 남았을 것이다. 대선 직전인 87년 12월 초 후보 부인들에 대한 인기도 여론조사에서 24%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 2위와의 차이도 2배에 가까웠다. 취임 직후인 88년 10월 갤럽 조사에서도 ‘대통령 부인으로 어울린다’(53,5%)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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