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보다 인정·의리 중시한 ‘1차적 인간관계’…
민주주의적 가치관 체계화 못한 ‘투박한 군인’형 지도자
전두환은 집권 초기 자신의 한 경제참모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할 정도로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국정을 운영하였다. 그러나 특정인에 의존하는 통치스타일은 최고 정책결정자의 리더십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경제정책 결정과정에서 청와대 경제수석, 장관, 그리고 실무국장의 세 축이 서로 긴밀한 연계성을 갖지 못함으로써 실무국장 중심으로 정책이 결정되는 한계를 낳았다. 특히 집권 후반기에 오면서 이와 같은 측면은 한층 부각되었다.
전두환은 능력보다는 인정과 의리를 중심으로 평가하고 혈연과 친소(親疎) 등과 같은 ‘1차적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전두환은 취임사에서 밝힌 것과 정반대로 친인척 비리에 휩싸이게 되었으며, 백담사로 가기 직전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도 부정부패의 본질을 친인척들이 주위의 유혹에 흔들려 말썽을 빚었다는 등 무책임한 발언을 하였다.
전두환은 출세욕이 강하고 자아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가 민주적 가치관이나 도덕률에 의해 적절하게 통제되지 못했으며, 그 스스로 민주주의적 가치관을 체계화할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기 때문에 투박한 군인에 불과하였다. 10·26 이후와 12·12 쿠데타 과정에서 김재규와 정승화에 대한 처리가 그런 단면을 보여준다.
전두환은 박정희과 같은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왜곡된 자유민주주의, 어설픈 민주주의의 신봉자였다. 박종철씨 사건 이후 전두환이 “정치는 집권여당이 하고 싶은 대로 끌고 가는 것”이라든가 “힘 가진 사람이 하고 싶은 게 원리”라고 한 것은 전두환의 사이비 민주주의 혹은 권위주의 국정철학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전두환은 한편으로 정치규제를 단행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박정희 시기에도 하지 않았던 관제 야당을 만들어 사이비 경쟁적 다당제를 유도하여 권위주의 체제의 태생적 불안정성을 극복하려고 애썼다. 정의사회 구현을 외치면서 언론(인)들의 부정부패를 강조하여 언론인 해직과 언론통폐합을 단행하면서도, 기자들의 처우개선이라는 당근으로 권언유착을 기도하기도 하였다. 사회악 일소와 사회정화라는 미명하에 삼청교육대를 만들어 인권을 철저하게 유린하면서도 정치규제 해제와 해직교수 및 제적학생의 복직과 복교를 통해 위무정책을 동시에 추진하였다. 이런 통치스타일은 군인으로서의 능숙한 심리전략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전두환의 4·13 호헌조치는 정치세력의 정치적 역량을 잘못 평가한 중대한 정치적 실수이였지만, 4·13 호헌조치의 철회를 통해서 정치적 분별능력을 보여준 결실로 중대한 고비를 넘긴 것은 평가할 만하다. 특히 전두환의 대통령 임기 7년 단임제의 약속 이행은 이전의 이승만, 박정희와는 다른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전두환의 7년 단임제 실현은 정치발전을 위한 전두환의 의지보다는 노태우라는 후임자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충분히 투영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인한다는 점으로 보았을 때에는 긍정적 평가에 대한 한계를 가진다. 더욱이 전두환의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태도를 묻는 질문에 91.6%가 억압했다고 응답하였고, 8.4%가 회유했다고 답했으며, 타협했다고 답변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은 전두환이 정치적 자유나 민주화라는 정치발전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전두환은 물가안정과 경제성장 등에서는 평가를 받을 부분이 있지만 정치발전과 민주화라는 점에서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전두환은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