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정치 패러독스’ 함수관계 파악하라

노무현 대통령이 새해 벽두 기습적으로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을 제안했다. 현행 5년 단임제를 임기 4년에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도록 하고,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를 일치시키는 내용의 이른바 ‘원 포인트 개헌’을 제시했다. 노대통령은 5년 단임제는 대통령의 책임정치를 훼손시키고, 대통령 국정 수행이 다음 선거를 통해 평가받지 못하기 때문에 국가적 전략 과제나 미래 과제들을 일관성과 연속성을 갖고 추진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반면, 4년 연임제는 국정의 책임성과 안정성을 제고시키고 국가적 전략과제에 대한 일관성과 연속성을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은 어느 정치세력에도 유리하거나 불리한 의제가 아니고 나라와 미래와 다음 대통령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 갑작스럽게 제안하기는 했지만 결코 어떤 정략적인 의도도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문제는 대통령이 아무리 자신의 진정성을 주장하고 있다 해도 개헌은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국민과 정치권이 개헌의 시기와 방법에 대해 거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국민들의 70% 정도가 ‘개헌은 다음 정권에서 하는 것이 좋다’고 했고, 국민 5명 중 3명 이상이 노대통령 개헌 제안은 ‘대선을 앞두고 영향을 주려는 정략적인 것’이라고 응답했다. 더욱이 개헌의 실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국회의원의 54.9%가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 특히 개헌 저지선을 확보하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89.7%가 ‘불가능하다’고 응답했다. 개헌에 대한 여론의 압도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대통령은 다음달 국회에 개헌을 발의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아무리 어려워도 국가와 미래를 위해 대통령에게 부여한 합법적인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야당 일각에서는 ‘나쁜 대통령’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언뜻 보면 진리와 모순되는 것 같으나 사실은 그 속에 일종의 진리가 있다는 의미로 패러독스(paradox)라는 말이 있다. 정치에도 분명히 패러독스가 존재한다. 그 중의 하나가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행사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좋은 대통령과 성공한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다. 현행 헌법에도 계엄 발동권, 긴급조치권 등 수많은 대통령의 권한들이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국민이 원하지 않는데도 오로지 합법적인 권한이라는 이유만으로 권한을 행사하면 나쁜 대통령이 되고 실패한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노대통령이 한번쯤 깊이 음미해봐야 할 대목이다.

정치의 또 다른 패러독스는 자신의 것을 버릴 때 오히려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야당과 언론이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대통령이 분노와 증오를 버리고 포용과 대화로 이들을 대하면 국정 안정을 얻을 수 있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과 레이건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8년 중 6년 동안 여소야대를 경험했다. 하지만 분노와 증오를 버리고 자신의 업무시간 상당 부분을 야당과 언론의 협조를 얻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퇴임 직전의 국민 지지도가 취임 직후보다 높은,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대통령이 국정을 마무리할 시기에 무엇인가 얻으려고 정치의 전면에 나서면 나설수록 결과적으로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이것이 한국 정치의 법칙이다. 노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헌법은 “국가와 공동체의 기본 규범이자 시대정신과 가치가 제도화된 틀”과 같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과제다.

‘원 포인트 개헌’으로 마무리할 그리 단순한 과제가 아니다. 영토 조항, 환경권 등 과거에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다양한 과제들을 충분한 시간을 갖고 포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따라서 개헌은 다음 정권에 맡기고 노대통령은 국민이 절실히 원하는 경제 살리기에 전념해야 한다.

더 이상 개헌에 매몰돼 경제와 민생이 무너지는 우를 범해 ‘나쁜 대통령’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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