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항하지 않았다고… 이해못할 ‘이중잦대’
강간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형법의 규정대로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해야 하나, 폭행이나 협박의 정도는 형법이 정하고 있지 않아 대법원에서 정한 원칙을 따르고 있다. 피해자가 거세게 반항하지 않는 한 강간으로 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즉 가해자 입장에서 정한 원칙이다.
다시 사건으로 돌아가 그녀가 운 이유를 살펴보자.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어머니와 살면서 15세 무렵 술 취한 사람으로부터 강간당한 경험이 있고, 그 후 다방에서 일하면서 속칭 방석집에서 3~4일간 일한 경험도 있다. 이때 방석집을 도망쳐 업주들의 협박과 추적을 피하던 중 남편을 만난 것이다. 이러한 과거의 나쁜 경험은 그녀로 하여금 남자의 협박 한마디와 때리는 시늉만으로도 저항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버렸다. 처음에는 저항하다가, 그 다음부터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그 남자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대법원의 입장에 서면 과거의 그녀의 나쁜 경험은 강간죄를 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판단기준이 될 수 없다. 그녀가 저항하지 않은 점만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 남자의 협박이 비교적 강도가 약해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저항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1차 성관계는 어떻게 양보해서 강간이라고 봐준다고 해도 드러난 폭행, 협박이 거의 없었던 2, 3, 4차 행위는 강간으로 절대로 인정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1심에서는 그녀의 흐느낌이 대법원 판례의 벽을 뛰어넘어버렸다. 판사는 피해자 입장에서 폭행, 협박의 의미를 판단했고 ‘전부’ 강간죄의 성립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여지없이 그 벽에 부딪히고 만다. 1차 성관계를 제외한 나머지는 강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면서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대법원에서는 당연히 항소심 손을 들어주었다.
대법원은 듣지 못해도 우리에게는 들린다. 조용하지만 힘찬 그녀의 목소리가.
“판사님은 저에게 왜 끝까지 반항하지 않았느냐고 물으시지만 더 반항하다 때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너무 두려웠어요, 차라리 꾹 참고 그 순간을 넘기자고 나를 달랬습니다. 어릴 때 당한 것에 비하면, 또 방석집을 생각하면 차라리 이 정도는 낫다고 생각했어요. 판사님이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그 남자는 저를 ‘강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