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피우진 예비역 중령이 제기한 전역처분 취소 인사소청을 기각하기로 결정한 것은 우리 사회의 획일주의적 둔감성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국방부의 견고한 성차별 조직문화와 암 생존자를 벼랑으로 내모는 인색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사건의 주인공인 피우진 예비역 중령은 81년 헬기 조종사가 되어 26년간 1300여 시간 비행, 2002년 유방암 수술,  2005년 심신장애 2급 판정  2006년 11월 30일 강제전역, 같은해 12월 13일 전역처분취소 인사소청 기각의 경로를 거쳐 날개 꺾인 피닉스(불사조: 피 중령의 항공호출명)의 모습으로 지금 우리 앞에 섰다.

국방부의 결정에 피 중령의 좌절을 안타까워하는 여론이 일자 국방부는 19일 국정브리핑을 통해 이 결정이 성차별이 아님을 거듭 강조하면서, ‘암이 심신의 안정을 요구하는 질환’이고, ‘전쟁을 준비하는 군인으로 격오지 상주, 야지 숙영, 철야훈련, 당직근무 등 격무를 감내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여 현행법령에 따라 퇴역처분 했다고 밝혔다.

피 예비역 중령은 2005년 정기 체력검정에 모든 항목에서 특급과 1급을 받았고, 전역명령을 받은 후 23일 동안 400㎞ 국토 종단을 거뜬히 해냈을 뿐 아니라, 유방암으로 왼쪽 가슴 절제 수술을 받을 때도 멀쩡한 오른쪽 가슴도 비행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동시 절제를 자진할 정도로 군인의 기백이 넘치는 사람이다.

현재 육·해·공 사관학교에서 여학생이 우수한 성적을 보이고, 부사관급 이상  여군 4000명이 전 분야에서 맹활약 중인 현실에서 이번 사건은 여성들에게 중요한 롤모델의 상실을 의미한다. 참여정부가 첫 여성 국무총리 배출 등 역사적인 성과를 보이며 얻었던 좋은 점수가 상당부분 깎이게 됐다. 

100번을 양보하여 국방부의 주장대로 이 사건을 성차별로 해석하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다.  이 사건은 암 생존자들에게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다는 큰 좌절감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 친구, 선후배, 직장동료 중에 암환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지금 이 시간도 수많은 지인들의 얼굴이 스쳐가지만 그들은 모두 100% 자신의 직장에서 완벽하게 열심히 일하고 있다. 

영화 ‘맨 오브 아너’의 실제 주인공인 미 해군 수석 잠수부 ‘칼 브레이서’는 한쪽 다리를 잃고 의족을 한 채로 수석 잠수부가 되는 영예를 안을 수 있었다. 우리 사회라면 흑인의 상이군인에게 어떤 조치가 내려졌을까? 같은 장애가 한 곳에서는 좌절의 원인이 되고, 다른 곳에서는 명예의 배경이 된다.

병술년의 좌절로 기억된 여성 헬기조종사의 이야기가 다가오는 정해년에는 희망의 아이콘으로 다시 쓰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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