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예술, 여성이 희망(하)

최근 이미경 CJ엔터테인먼트 부회장이 탁월한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아시아인 최초로 ‘2006 세계여성상’ 경영부문을 수상한 사건은 우리 여성 문화예술인의 역량을 세계에 알린 쾌거였다. 제6회 미당문학상 김혜순, 제37회 동인문학상 이혜경 등 주요 문학상을 여성들이 휩쓸고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순수문학으로는 드물게 종합베스트셀러 순위에서 8주째 1위를 달리고 있는 등 문학계 여성파워도 날로 강해지고 있다. 또한 김홍남 국립중앙박물관장, 안정숙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조선희 한국영상자료원장 등 정부산하 주요 문화기관에 여성 단체장도 잇달아 배출되고 있다. 문화관광부 2005년 발표 ‘문화산업통계’에 따르면 문화산업 인력의 41.3%가 여성으로 음악 산업의 54.9%, 출판 산업의 44.6%, 영화 산업의 34.0%를 차지할 만큼 문화예술계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도 날로 커지고 있다. 문화예술 각 분야의 여성인력들의 활약상을 살펴본다.

[영화] 마케팅·미술 강세…기술직엔 거의 없어

‘괴물’과 ‘왕의 남자’ 등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하는 흥행대작이 잇달아 나오면서 성장하고 있는 영화 산업. 그러나 여성인력들은 직종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마케팅(79.0%)과 미술(60.7%)에서 높은 여성비율을 보이는 반면 기술직인 촬영(7.14%), 조명(12.9%), 녹음(0%) 분야에선 여성을 찾아보기가 힘들다(노동연구원, ‘영화산업인력 직무 및 근로 실태 조사’, 2005).

특히 여성 CEO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심재명 MK픽쳐스 영화제작부문 대표, 김미희 싸이더스FNH 공동대표, 채윤희 올댓시네마 대표 등어 대표적인 충무로 CEO들이다. 여성감독들은 주로 독립·단편영화에서 활약하고 있다. ‘낮은 목소리’의 변영주 감독,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감독,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감독 등이 있다. 평론가이면서 강단에서 활약 중인 유지나 동국대 교수, 변재란 순천향대 교수,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도 대표적인 여성영화인이다.

[문학] 2080 차세대부터 거목까지 다양한 스펙트럼

문학 분야에선 여성독자의 힘이 대중성과 문학성을 겸비한 다양한 연령대의 스타 여성작가를 배출하고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올해 팔순을 맞은 여성문학계의 거목, ‘토지’의 박경리와 70대 나이에도 연애소설를 쓰는  박완서의 뒤를 오정희, 최명희, 이경자 등 중견작가들이 받치고 있다. 여기에 90년대 대거 등장한 386세대 여성작가들 공지영, 전경린, 신경숙, 강석경, 은희경, 공선옥, 김형경 등도 문학계의 대표주자로 활약하고 있다.

또한 최근엔 개성적인 문학세계로 승부하는 신진작가들이 계속 등장해 한국 여성문학의 청신호를 밝혀주고 있다. ‘미실’로 국내 최고 상금(1억원)인 제1회 세계일보 문학상을 수상한 김별아, ‘달콤한 나의 도시’로 2006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문학부문을 수상한 정이현, 사상 최연소인 25살 나이에 ‘달려라 아비’로 제38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김애란 등이 그 들이다.

[방송] 한류 열풍의 숨은 주역…시사 프로 진출 활발

‘대장금’(김영현), ‘가을동화’(오수연), ‘겨울연가’(김은희·윤은경) 등 방송계의 한류열풍을 주도하는 숨은 주역이 바로 여성 방송작가들이다. 방송작가협회에 따르면 협회에 소속된 2000여명의 방송작가들 중 여성의 비율은 70%이상. 중국 문화 전문가들이 “한국 드라마의 성공은 이들의 공이 크다. 한국 여성작가는 섬세하고, 함축적이고 생활의 세세한 느낌을 잘 끄집어낸다”고 평할 정도이다.

‘히트 드라마 제조기’ 김수현, 수많은 마니아 층을 거느린 노희경, 높은 시청률과 비판을 동시에 받는 ‘하늘이시여’의 임성한, ‘내이름은 김삼순’으로 각광받은  김도우 작가 등은 배우 못지 않은 스타이다.

또한 여성 단독 MC가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부쩍 늘어났다. 뉴스프로그램 ‘시사 투나잇’의 오유경 아나운서는 여성이 TV 시사프로 메인MC가 되는 선례를 만들었고 이금희, 최윤영, 정용실, 김경란 아나운서도 단독MC로 빼어난 진행 실력을 가진 인물들. 최근에는  김미화,  최광기 등 타분야 여성전문가의 시사프로그램 진출도 활발하다.

[공연] 연출·음악·배우 등 뮤지컬 붐 주도 세력으로

경기 불황 속에서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뮤지컬 붐을 주도한 것도 여성들의 힘이 컸다. 관객의 90%이상이 여성인 작품도 있을 정도이며 특히 20대부터 4050세대 주부들까지 다양한 여성관객층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정은숙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은 대표적인 문화 CEO이며 장유정, 이항나, 이지나 등은 뮤지컬을 이끌어나가는 차세대 연출가들. 박칼린 음악감독은 주요 뮤지컬의 음악을 맡으면서 후배 양성으로 음악감독계의 ‘박칼린 사단’을 이끌고 있기도 하다.

또한 ‘맘마미아’의 박해미·전수경, ‘명성황후’의 이태원, ‘히트작 제조기’ 최정원 등은 대표적인 스타 뮤지컬 배우들이다.

연극분야는 손숙, 윤석화, 김성녀, 박정자, 김지숙, 윤소정 등 중견 배우들이 여전히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이을 차세대 여배우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연극계의 극복해야 할 과제. 연출가로는 최초의 본격적인 여성 연출가인 고 강유정, 한태숙, 김아라 등이 대표적이다.

[미술] 전시기획 70% 이상 담당

미술분야 여성들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큐레이터의 70%이상이 여성이라는 점이다. 전시기획 분야에서 여성의 활약은 특히 돋보인다. 제6회 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을 맡았던 김홍희 쌈지 스페이스 관장, 외부 인사(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 출신 최초의 관장으로 눈길을 모은 김홍남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등은 경영에서도 큰 성과를 보이고 있다.

최근엔 큐레이터나 아트디렉터, 작가로 활동하다가 직접 화랑경영에 뛰어든 사례가 늘고 있다. 박경미 PKM갤러리의 대표, 이화익 이화익갤러리의 대표, 박규형 아트파크 대표, 제1세대 페미니스트 사진작가인 박영숙 트렁크갤러리 대표 등이 주인공들이다.

화가로서는 근대 여성미술의 개화기를 강렬한 색채가 인상적인 천경자, 페미니스트 미술을 개척한 윤석남의 뒤를 이어 서양화가 황주리, 수묵 추상작가 오숙환, 해외에서도 유명한 설치미술가 이불 등이 활약 중이다.

[무용] 최승희 후예들 세계무대 빛내

여성들의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예술분야인 무용계. 그러나 활동하는 무용수들의 대다수가 여성들임에도 불구하고 평론가나 단체 회장들은 남성들이 독식하고 있는 모순을 가진 분야이기도 하다. 또한 아직까지 인맥과 학맥을 중심으로 한 판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닫힌 예술’을 극복하는 것이 무용계의 과제다.

한국 근대무용의 선구자인 최승희 이후 수많은 무용가들이 뒤를 이었다. 한국 창작춤의 개척자인 김매자 창무예술원 이사장, 육완순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 단장, ‘병신춤’의 공옥진은 우리나라 무용계를 이끌어온 원로들.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은 정동극장장으로 경영 일선에 나섰고 89년 동양인 최초로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최연소 입단한 발레리나 강수진은 세계 무대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동양적 전위무용의 선구자로 세계 18인 무용가로 선정되기도 한 홍신자, ‘한국 무용의 이단아’ 안은미도 대표적인 무용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