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칼럼은 여성신문이 제정한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 지도자상(미지상)’ 수상자들의 기고문이다. 이번 순서는 부모들과 함께 육아공동체와 초등대안학교인 ‘산어린이학교’를 설립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5월 가정의 달 기념식에서 국민포장을 받은 사단법인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의 황윤옥 사무총장이다.

용산 미군기지 영안실, 한 미군 장교가 단지 “먼지가 많이 쌓였다”는 이유로 포름알데히드 수백 병을 싱크대에 버리라고 명령하고, 독극물 수백 병은 그대로 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대한민국 영화 꿈의 숫자인 1500만 관객을 넘본다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의 첫 장면이다. 독극물이 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한국인 직원의 항의에 대한 미군 장교의 답은 이렇다. “그래서, (한국인이 독극물을 마시게 되면) 무엇이 문제인가?”

지금 우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정부의 말을 듣고 있으면, 우리는 군사와 경제에서 세계 최강인 미국과 마치 서로 동등하게 이익을 나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객관적인 규칙을 통해 자유경쟁을 보장받는다는 스포츠 경기조차 산술적으로 똑같이 유리한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홈경기의 이점은 누구나 인정하고 들어간다.

불행하게도 한·미 FTA는 미국의 홈경기다. 이미 미국과 우리의 관계가 서로 동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과 우리가 주고받는 품목도 동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영화 ‘괴물’로 돌아가 보면, 한강에 괴물이 나타나자 미국은 피해자인 강두를 ‘바이러스’를 가진 가해자로 만들어 잡아놓는다. 원인 제공자인 미국이 어느새 해결사가 되어 있는데, 그 미국의 해결책이라는 것이 한강에서 시민을 몰아내고 강두의 머리를 갈라보는 것이다.(강두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항의하면 미국은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데?”)

영화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하지 말자. 원인 제공자이면서도 해결사를 자처하는 미국의 모습은 영화보다 우리의 현실에서 오히려 더 익숙하다. 아니, 사실은 우리 스스로 미국식 해결에 익숙해질까 봐 더 겁난다. 정부는 한·미 FTA로 인해 양극화는 심해지겠지만 전체 성장이 좋아지면 사회안전망 등에 투자할 돈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괴물’의 흥행은 이른 시일 안에 많은 관객을 동원하여 우리 영화의 자존심을 지켰다는 점에서는 반갑지만, 그 배급방식이 할리우드를 닮았다는 점에서는 슬프다. 말하자면 할리우드 영화에 대항하기 위해서 우리도 할리우드식으로 홍보나 배급에서 우리 영화 중에서 될 만한 영화에 몰아주기를 한 셈이다. 경제라고 다르겠는가. 철저히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논리만이 인정되는 시장의 흐름에서는 성장의 과실은 더 성장하기 위한 투자로 계속 이어질 뿐이다. 

미국과 우리의 불공정 거래는 협상 품목을 들여다보면 더 분명해진다. 정부에 따르면 이번 협상에서 우리는 공산품이, 미국은 농산물과 투자, 서비스 등이 비교우위란다. 이는 우리가 미국에 주는 것은 ‘자동차’처럼 생활의 편리를 위한 것이지만, 미국으로부터 우리에게 들어오는 것은 ‘먹거리’와 ‘법률 서비스’ 같은, 우리의 ‘밥상’과 ‘정신, 제도’를 바꾸는 것들이라는 얘기다. 미국식 사고방식과 미국식 생활양식이 우리의 생활의 기준이 되어버린다는 말이다.

영화 ‘괴물’의 마지막에서, 온 가족이 살리려고 했던 가장 약자인 현서는 자기보다 더 약한 꼬마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괴물에 대항하는 약자의 연대, 감독은 이것이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FTA, 곧 자유무역협정을 극복하기 위한 민중무역협정이라는 것이 있다는 점도 한번 생각해볼 만하다. 볼리비아가 제안하여 베네수엘라, 쿠바, 볼리비아 사이에 맺어진 이 협정에서 볼리비아는 ‘자유무역’이 아니라 생산자에 공정한 가격을 지불하는 ‘공정무역’을 주장했다.

이번 한·미 FTA가 우리를 미국의 열등시민으로 전락시키는 통한의 거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미국과 무엇인가를 협상한다면, 미국이 가진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하는 ‘자유 거래’가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상호 간의 ‘공정한’ 거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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