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는 작년 이맘때쯤에 외고 준비하느라 정말이지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올 지경이었다. 나도 어쩌다 우리 딸이 외고를 지망하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제 친한 친구들이 모두 시험을 본다니까 덩달아 호기심이 생겼던 것일 게다.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제 엄마의 긴 혀를 닮았는지 발음 좋다는 칭찬을 자주 받게 되다 보니 영어를 참 좋아하긴 했다. 초등학교 때는 타고난 ‘끼’까지 가세해 영어연극대회에서 상도 여러 번 받았다.

그렇지만 영어 시험에서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꾸준히 학원도 다니고 단어도 많이 외운, 공부로 접한 아이들의 시험성적을 앞지를 수는 없었다. 언제나 금상, 은상은커녕 장려상에도 못 들어 참가에 의의를 두는 정도였지만 정작 외고 시험은 영어 실력 순은 아니라고 했다. 영어 시험 외에 구술시험이란 것이 있었는데 내가 보기엔 그저 아이큐 검사 정도가 아닐까 생각되었지만 그걸 대비해 밤낮없이 학원을 돌려야 한다고 했다.

뒤늦게 중3 여름방학 때부터 시작했으니 4개월 여의 공부였지만 머리카락이 다 빠질 정도로 신경이 곤두섰다. 처음엔 한번 시도나 해보지 하는 순진한 마음이었지만 학원에 발을 들이는 그 순간부터 이미 ‘올인’ 체제를 벗어날 수 없게 볶아댔다. 저러다 떨어지면 상처 받을까 하여 걱정이었지만 다행히 딸애는 붙어줬다.

시험도 반은 운이라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우리 애가 떨어진 많은 아이들의 실력보다 출중하달 수 없는 건 내가 더 잘 알았다.

그런 딸애가 처음엔 새로 생긴 남자친구들과도 잘 놀고 반 아이들 모두가 다 좋다고 희희낙락 다니더니 엊그제 시험을 끝내고 와서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우울모드에 잠겨있다. 자기는 공부도 못하고 자기 친구들은 다 특기 과목이 하나씩 있는데 그런 것도 없고 인생 끝장이라는 것이다. 공부를 해도 성적이 나아지질 않으니 영~ 가망이 없다는 거다. 듣는 내 기분도 좋은 건 아니었지만 위로를 안 할 수도 없었다.

“성적 좋은 순서대로 잘 사냐? 봐라. 그보다 못한 엄마도 잘만 산다. 공부만 디비 파서 재밌게 사는 거 별로 못 봤다. 니가 행복하게 살면 되지 세상에서 젤로 쓸데없는 짓이 자학이다. 뚝!!!”

사실 엄마라고 왜 욕심이 없겠냐마는 내 아이 성정은 이미 파악이 끝난 상태다. 우리 딸은 그렇게 울면서도 다음 시험을 위해 책상에 다가앉는 독종과는 거리가 멀다. 금세 히히히 하며 개그프로에 다가앉는다. 뺑뺑이로 공부만 해서 행복해질 아이가 아니다. 그런 근성은 타고나는 것일 게다. 게다가 나 또한 애를 책상에 묶어놓을 만큼 독종 엄마도 못 되니 어찌하겠는가.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딸아이가 얼렁뚱땅 외고를 들어가서 바닥을 깔아주고 있든 말든 치열한 상위권 다툼의 욕심을 접어버린 이 엄마는 요즘 그 애를 보고 있자면 참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그 아이의 모습이, 그 아이의 갈등이 꼭 내 것인 것만 같아서다.

1년 전엔 학교만 들어가면 소원이 없을 듯이 몸부림을 쳐놓고선 들어가서는 또 잘나가지 못해서 안달복달이다. 어찌 그리 내 사는 모습과 같을까. 누군가 이렇게 말하더라. 행복은 저 높은 곳이 아니라 제 키 높이에 있다고…. 오늘은 우울한 딸과 낄낄대면서 행복 사냥이나 나서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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