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천한 강원용 목사

“여성이 해방되지 않으면 남성도 해방될 수 없다” “여자를 구속하는 것은 곧 남자를 구속하는 것이다.”  

지난 8월 17일 타계한 여해 강원용 목사는 비인간화와 양극화를 극복하고 사회 통합을 이룰 최우선 과제로 여성 권익 향상과 남녀평등을 꼽은 페미니스트 선각자였다. 그 중에서도 오늘날 한국 사회를 이끄는 여성 리더 대부분을 키워낸 실질적인 여성운동의 ‘대부’였다.

1917년 함경남도에서 태어난 강 목사는 1935년, 소 판 돈 70원을 갖고 만주 용정으로 가 농촌계몽운동을 펼쳤다.

광복 후에는 정치지도자 김규식, 여운형 등을 도와 좌우합작운동에 참여했고, 7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는 김수환 추기경, 함석헌 선생 등과 함께 민주화 운동에 힘썼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65년 강 목사가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후 설립한 ‘크리스챤 아카데미’(현 대화문화아카데미)가 있었다.

당시 크리스챤 아카데미가 제시한 목표는 바로 ‘인간화’였다. 그리고 우리 사회 비인간화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양극화’에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양극화란 빈과 부, 노동자와 자본가, 도시와 농촌, 남성과 여성 등 확연히 벌어진 단절을 의미했다. 양극화와 비인간화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한 운동은 대화운동이었다. 이에 강 목사는 74년부터 교회, 농민, 노동자, 여성, 학생단체를 대상으로 ‘중간집단 양성 교육’을 실시했는데, 이중 가장 문제라고 생각했던 여성교육에 큰 비중을 두었다.

이는 여성 의식화 교육으로, ‘남녀평등과 인간화’를 주제로 4박5일간의 강의와 워크숍,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한국 여성문제의 해결방안을 논의하고, 실천방법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74년 아카데미의 ‘30대 후반 중견 여성 교육’을 참관한 일본인 몇 명은 “일본 여성운동보다 적어도 50년 앞섰다”며 감탄했을 정도다. 그러나 박정희 유신정권이 이 활동을 반정부 의식화 교육으로 판단, 79년 한명숙 국무총리,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 등 당시 크리스챤 아카데미 간사 6명을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이른바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이었다.

공안기관의 탄압으로 교육은 중단됐지만 75년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120여 명의 여성 지도자가 범여성가족개정추진위원회를 발족했을 당시 실무진은 모두 중간집단 양성교육을  받은 여성들이었다.

이 외에도 강 목사는 처음으로 교회에 남녀 혼석을 만들었고, 74년 기독교장로교총회에서는 첫 여목사제도 법제화에 구체적으로 물꼬를 터주었다. 또 75년 가족법 개정운동 공청회에서는 “소수의 의식화된 여성들이 사회화하는 과정에서 여성 대중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등 깨어있는 여성문제 선각자였다.

강 목사는 88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주의 정론지인 ‘여성신문’의 태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여성신문 초대 대표이사를 역임한 이계경(한나라당) 의원은 “74년 중간 집단교육을 통해 여성문제에 눈을 떴고, 그 후로 여성운동을 계속 하면서 ‘여성신문’을 만들게 됐다”면서 “창간 때부터 항상 기념식 축사는 강 목사님께 부탁드렸으며, 목사님께서도 여성신문이 기적과 같이 존속한다면서 ‘늘 내가 도와줄 일은 없는가’ 하시며 따뜻한 관심과 격려를 해주시곤 했다”고 회고했다.

70년대 크리스챤 아카데미 이화여대 신입생 중간집단교육.
▲ 70년대 크리스챤 아카데미 이화여대 신입생 중간집단교육.
올해 7월 강원용 목사와 크리스챤 아카데미에서 활동했던 이들이 모였다. 한명숙 국무총리, 이계경 한나라당 의원, 이현숙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이혜경 여성문화예술기획 이사장, 이정자 녹색상품구매네트워크 대표 등이 참석했다.
▲ 올해 7월 강원용 목사와 크리스챤 아카데미에서 활동했던 이들이 모였다. 한명숙 국무총리, 이계경 한나라당 의원, 이현숙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이혜경 여성문화예술기획 이사장, 이정자 녹색상품구매네트워크 대표 등이 참석했다.
지난 8월 18일 크리스챤 아카데미의 ‘여성사회’ 주관으로 열린 추모예배. 최영애 국가인권위 상임위원과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등 참석자들은 ‘평화’라고 쓰인 글자 위로 꽃과 촛불을 놓으며 고인을 떠나보냈다.
▲ 지난 8월 18일 크리스챤 아카데미의 ‘여성사회’ 주관으로 열린 추모예배. 최영애 국가인권위 상임위원과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등 참석자들은 ‘평화’라고 쓰인 글자 위로 꽃과 촛불을 놓으며 고인을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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