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이야기’ 사태 단상

온 나라가 ‘바다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성인오락실을 빙자한 도박장이 전국을 뒤덮고, 수많은 서민들이 파탄 지경에 이른 다음에야 세간의 관심이 터져 늦은 감이 있다. 곳곳에 성인오락실이 들어서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현실을 알지 못했었다. 몇 달 전 택시기사가 나에게 신세 한탄을 시작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기사는 하루 종일 택시 운전해서 번 돈을 성인오락실에서 잃고 있었다. 도박에 중독되어 개인택시를 사기 위해 준비한 돈마저 날렸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끊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그런 불법 도박장이 어떻게 단속 없이 성업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도박장은 불법이 아니라 나라에서 허가를 내주고 도박장 전용 상품권을 만들어서 도와주고 있다”고 대답했다.

설마, 나라가 도박을 도와주고 있다니? 확인을 해보니 사실이었다. 수많은 성인오락실과 성인PC방은 정식으로 등록된 도박장이었다. 도박기계와 게임물은 심의를 통과한 것이고, 정부가 허가해준 수십조 원에 달하는 상품권이 도박장 전용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도박 열풍의 시발점은 도박상품권 허용이었다. 도박상품권 허가는 엄청난 특혜다. 다른 상품권은 현금으로 교환해 달라고 돌아오지만 도박상품권은 도박장에서 계속 돌리기 때문에 현금화되지 않아서 장기간 이자 수입을 얻을 수 있다. 23조 원의 상품권이 발매되었기 때문에 연5% 이자수입을 얻는다고 가정하면 줄잡아 1년에 1조6500억 원이 발매업체에 불로소득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도박장들은 승률을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승률을 되도록 높여서 도박을 자주 하도록 유도한다고 한다. 딴 사람에게 도박상품권을 할인해 줄 때 받는 10~15%의 수수료가 주 수입원이라는 것이다.

도박 열풍으로 피해를 본 계층은 주로 서민층이다. 도시 서민과 농어민을 포함해 도박중독자가 300만 명이라고 한다. 전국에 등록한 도박장이 2만 개이고, 불법 도박장까지 합치면 3만 개에 달한다. 도박장마다 사람들로 와글거린다고 하니 이 순간에 도박하고 있는 사람들만 따져도 수십만 명에 달한다.

이번 ‘바다 이야기’는 도박으로 파탄 난 가정이나 공무원의 비리와 같은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정말 우려되는 것은 정부가 일을 추진할 힘의 원천을 잃고 있는 모습이다.

참여정부는 기득권층보다는 서민층을 대변한다고 표방하고, 서민층의 지지를 기대했다. 그런데 그동안 정부는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기득권층과 싸우느라고 그렇다는 말도 들렸고, 보수층이 장악한 여론의 호응을 못 받아서 그렇다고도 했다.

참여정부의 지지기반인 서민층이 도박 열풍으로 타격을 받아 민심 이반이 생기고 있다. 서민층마저 정부에 힘을 보태주지 않는다면 가뜩이나 침체된 정부가 일할 수 있는 분위기는 더 위축될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할 때 골탕을 먹는 것은 국민이다. 결국 도박 열풍의 진정한 피해자는 전체 국민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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