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품고 유럽을 누비다

“다빈치는 괴팍하고 잘난 체하는 느낌. 미켈란젤로는 한술 더 떴지. 그 틈새에서 라파엘로는 항상 젠틀하고 상냥한 이미지로 묘사되지만 나 같은 사람에겐 별 매력이 없어.”

기존 미술평론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낯선 시각으로 미술을 바라본 독특한 미술 기행서가 나와 화제를 모으고 있다. 24세의 두 미대생, 이유리·서효민씨가 80일 동안 유럽 곳곳을 누비고 돌아와 펴낸 여행기 ‘예술을 품고 유럽을 누비다’(아트북스)가 그것이다.

유럽 10개국 40여 곳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꼼꼼히 돌아보고 돌아온 그들에게 남은 것은 일기장 2권과 수백장의 사진과 스케치, 그리고 각종 팸플릿들. ‘미술평론가들이 쓴 딱딱한 미술 교양서가 아닌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미술 여행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뭉쳐 자료를 정리하고 함께 글을 써 나갔다.

‘팔레 드 도쿄’의 내부 전경. 최전선의 현대미술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추천한다.
▲ ‘팔레 드 도쿄’의 내부 전경. 최전선의 현대미술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추천한다.
“기존 감상법에 얽매이지 말고 둘만이 느꼈던 감상을 담고자 했어요. 어차피 미술 감상이란 주관적인 것 아니겠어요”라는 서효민씨의 말처럼 이 책에선 젊은 미술학도의 독특한 시각이 돋보인다. 그로테스크한 고야의 그림을 보고 “고통과 분노는 어떤 사람에게는 정신을 병들게 하는 독이 되지만 예술가에게는 정신을 숭고하게 하는 디딤돌이 된다”면서 래퍼 애미넴의 영화 ‘8마일’과 연결하는가 하면 마그리트의 ‘인간의 조건’을 보고는 영화 ‘메멘토’를 떠올린다.

‘바로크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는 루벤스’라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 대신 ‘리베라야말로 바로크 회화의 전형’이라는 자신들만의 이론을 만들기도 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현장에선 “제대로 돼먹지 않은 몇몇 현대예술들, 혼자만 좋아 날뛰는 독단적인 감각 아니면 엘리트 사고로 무장한 가증스런 사회고발이 거북하다”면서 현대미술에 일침을 놓기도 한다.

미술관이나 작품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기보다 둘 사이에 오가는 주관적인 감상과 열정적인 논쟁이 무거운 해설을 대신하는 것도 특징. 이로 인해 학창 시절 배운 미술사가 가물가물한 일반인이라도 그들의 여정과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작가의 특징과 대표 작품들이 익숙하게 다가온다.

미술관과 거리를 보여주는 다양한 사진과 촬영이 금지된 작품을 직접 스케치한 그림들은 보는 즐거움을 준다. ‘프랑스에선 미술 전공자에게 미술관 입장료가 무료’ 등의 팁과 나라별로 미술관의 주소와 개관시간, 입장료 등을 꼼꼼히 정리한 정보들도 유용하다. 이유리·서효민 지음/ 아트북스/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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