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주회만 끝나면 정말 다시는, 절대 이런 일은 안 할거야!’

피아니스트들은 한 번 독주회를 하려면 소 한 마리는 잡아먹어야 할 정도로 힘이 든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악기가 크다 보니 육체적인 노동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그래서 연주회를 준비할 때마다 이와 같은 절규(?)를 하지만,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다음번 연주회는 어떻게 꾸밀까 벌써 고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팔자인가 보다.

무대 위에서 느끼는 청중과의 교감은 정말 살아있다는 환희를 가져다준다. 그러다 보니 매번 연주회를 준비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청중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클래식 음악 자체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더구나 난해한 프랑스 음악은 더더욱 상호 소통이 안 되는 것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프랑스 음악이 어려우세요?’라는 해설 음악회다. 음악과 관련된 그림을 영상으로 띄우고, 시를 낭송하고, 해설까지 곁들인다. 물론 직접 연주도 하는, 그야말로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음악회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기획할 때는 그런 음악회면 사람들이 재미있어하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막상 준비를 하다 보니 요새 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이런 종류의 음악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음악회였으므로 영상을 쏘는 기술적인 문제 해결도 만만치 않았고, 그림을 선택하는 문제 등 어려움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 모든 것을 혼자 준비하고 연출해야 한다는 일이었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형식의 음악회였기 때문에 마땅히 자문을 구할 데도 없이 막막하기만 했다. 연주하는 일만도 만만치 않은데, 해설을 하며 시를 낭송하며 그림과 음악을 조화롭게 펼쳐내 보인다는 것은 정말이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준비를 하면서 ‘내가 미쳤지’라는 소리를 아마 수백 번은 더 했을 것이다.

그 공연은 처음에는 1회 공연으로 기획된 것이었다. 그런데 청중의 반응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호의적이었다. ‘진작 이렇게 하지 그랬어요’ ‘너무 이해가 잘 된다’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다’ ‘아주 친절한 음악회였다’ 등. 모두가 그런 음악회를 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해왔다. 그들의 반응이 무척 고맙고 보람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동안 연주자로서 청중에게 너무 오만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파고드는 살아있는 음악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게 되었다.

어떤 청중 한 분이 잊히지 않는다. 음악회가 끝난 후 사인을 부탁하셨다. 그분은 음악 치료를 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 음악회를 보면서 자신이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하셨다. 연주자에게 이보다 더 큰 격려의 말이 있을까. 그러나 사실 그분은 내게 큰 채찍을 주신 것이다.

결국 ‘프랑스 음악이 어려우세요?’는 지난해 11월에 3회를 넘기게 되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다음에는 영화와 관련된 음악들로 꾸밀 거라는, 2006년 음악회에 대한 예고편까지 보여주고 말았다. 요즘 보는 사람들마다 “너무 기대돼요”라고 말한다. ‘왜 또 일을 저질렀을까, 어디로 도망갈 수는 없을까’라는 후회와 불안 모드로 나는 다시 접어든다. 아! 누가 나를 2006년 11월 19일까지만 납치해 주었으면 좋겠다.

cialis coupon free cialis trial coupon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