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직업 조건 ‘성차별’ 1억대 성기성형 ‘생계위협’

성 전환자의 성별변경 제도화 움직임은 지난 2002년 여야 의원 20명이 공동으로 ‘성 전환자 성별 변경 등에 관한 특례법’을 발의한 것이 첫 시작이다. 그해 ‘트랜스젠더 연예인 1호’인 하리수씨도 이례적으로 1번에서 2번으로 호적을 정정했다. 하지만 당시 회기 만료로 법안이 자동 폐기되면서 성 전환자들의 오랜 숙원은 무너졌고, 4년이 흐른 지난 6월 22일 대법원이 성 전환자의 호적 정정을 허가하는 ‘전향적’ 판결을 내리면서 논쟁은 다시 점화됐다.

성 소수자 단체들은 대법원의 판결에 ‘일단 환영’하는 입장이다. 관련법이 전무한 상황에서 호적 정정을 허가한 대법원의 판결은 그 자체로 법에 준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부성기 성형과 의복·두발·직업 등 전환된 성에 맞는 외모를 갖춰야 한다는 일부 규정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욜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성 정체성과 다른 외모나 직업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며 “대법원이 전환된 성에 맞는 외모와 직업을 호적정정 기준으로 규정한 것은 엄연한 성차별이자 인권침해”라고 지적했다.

한무지 한국성전환자인권모임 대표도 “아름다운 여성에게 관대한 한국 사회에서 예쁘지 않은 트랜스젠더는 트랜스젠더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지금도 어렵게 모은 돈을 모두 얼굴 성형에 쓰고 있는 상황에서 최고 1억 원에 달하는 성기 성형까지 추가된다면 트랜스젠더들의 생활고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주노동당이 9월 발의할 예정인 특례법에는 고가의 성기 성형 대신 다시 성을 바꿀 수 없도록 생식 능력을 영구히 결여시키는 것이 조건으로 규정돼 있고, 직업 등 외모에 관한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 2004년 성 전환자의 성별 정정을 제도적으로 허용한 일본의 경우 특례법에 ‘외관이 근사할 것’이라는 외모 지향적 조항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성기 성형 등 외모 조건을 갖추지 않은 성 전환자에게도 호적 정정을 허용하고 있다.

최현숙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장은 “특례법 제정은 단지 주민번호 1번과 2번 중 어느 줄에 설지 결정해주는 것에 불과하다”며 “장기적으로 볼 때 수술 여부와 관계없이 성 전환자들을 다양한 사람들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사회적·문화적 풍토의 조성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