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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인생이란 무엇인가’ 만큼이나 어렵고 애매한 질문이다. ‘인간의 몸으로 하는 모든 움직임’을 총괄해서 일컫기도 하고 사람마다 자신만의 정의를 내리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춤은 다음과 같은 단계로 ‘진화’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전 예술적 단계’의 춤은 지극히 몸적이고 과학적인 단계다. 현재 이 자리에서 볼 수 있고 실험할 수 있어야 하는 과학처럼 춤도 재생이 가능해야 한다. 이 단계에선 누구나 쉽게 춤을 접하고 특정 동작을 따라하며 연마하는 단계다.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는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해도 결국 제한된 몸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인간은 육체를 가진 존재이고 죽으면 육체는 부패해서 사라지는 물질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눈뜨게 된다. 춤을 통해 몸과 죽음의 문제를 깨닫게 되는 단계인 것이다.

그 다음이 ‘예술적 단계’. 여기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죽음을 인식하는 인간의 의식이 춤 속에서 강하게 드러난다. ‘보는 나와 보이는 나’ ‘생각하는 나와 생각되는 나’ ‘춤추는 나와 춤춰지는 나’와 같이 주체와 객체가 한 몸에서 넘나들며 함께 하는, 춤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읽고 인식하는 단계다. 그래서 최근 정신분석학에서는 춤동작을 통해 심리를 연구하기도 한다.

또한 삶과 죽음이 무수히 교차하는 이 단계에서 춤은 죽음을 피하고 영원을 얻기 위한 처절한 시도라고도 할 수 있다. ‘내 예술’이라는 예술가로서의 자기의식과 소유개념을 가짐과 동시에 예술가로서 문제의식을 갖는 단계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혼과 영의 영역인 ‘초예술적 단계’로 접어든다. ‘내 예술’이라는 자기의식을 초월하는 단계인 것. 이 단계에 들어선 춤꾼은 주체적인 자신의 춤을 추면서도 자아와 죽음을 넘어서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단계에서의 춤은 종교적인 경지에 이르게 되며 자연과학이나 인문학으로는 더 이상 해석이 불가능하고 신학이나 종교학으로 해석해야 한다.

오직 인간만이 춤이라는 예술행위를 할 수 있는 동물이다. 동물들에게도 전 예술적 단계에 해당하는 몸의 움직임은 있지만 정신적이고 영적인 춤은 인간만이 가능하다. 동물의 움직임은 단순한 몸짓이지만 인간의 춤은 흉내가 아닌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영성이 풍부한 춤꾼은 자신의 몸에 몰입해서 탈혼의 경지까지 다다르면서 자아로부터 초월할 수 있다.

이 초월이 바로 그 이전과 다른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원천이다. 이처럼 자아를 초월한 인간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과도 같은 영성을 지닌 창조자가 된다. 이 정도의 경지에 이르면 인간과 생명에 대한 사랑에는 아무 조건도 필요 없게 된다. 또한 무궁무진한 세계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지극히 일부분임을 깨닫고 스스로 또 다른 탐구에 정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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