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칼럼은 여성신문이 제정한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 지도자상’(미지상) 수상자들의 기고문이다. 이번 순서는 고객관계관리(CRM) 전문가로서 손해보험업계 유일의 여성 임원인 박현정 삼성화재 상무다.

최근 수년간 언론에서는 신입사원 중 여자의 비율이 몇 퍼센트이고, 외국계 기업을 필두로 대기업 여성 임원이 몇 명이라는 등의 기사가 종종 거론되고 있으며, 더불어 사법시험, 의대생, 정치권이나 공직사회 등에 ‘여풍’ 운운하는 기사도 눈에 띈다.

그러나 우리나라 노동시장 전체에서 취업상황이나 임금구조를 살펴볼 때 직군별, 직급별로 과연 ‘여풍’이라고 부를 만큼의 비중이 되는지 모르겠다. 100대 기업에 여성 임원이 아직도 22명에 불과해 전체 임원의 1%에도 한참 못 미치는 것이 현실이며, 일부 기업의 경우 ‘토큰(token)’으로서의 홍보 효과를 위해 전략적으로 임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미래 임원의 잠재집단이라 할 수 있는 부서장급이나 중간 간부층(회사 직급체계에서 통상 부장, 차장, 과장으로 불리는 계층)의 여성 비율은 훨씬 낮은 것이 현실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나, 현장에서 많은 후배들을 지켜본 결과 아무리 노력해도 개인적인 노력만으로 극복하기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결혼한 여자에게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전통적인 역할 기대’라고 생각한다. 육아와 살림이라는 ‘결혼한 여자에게 기대되는 역할’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든 현실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회사 업무에 몰두해야 경쟁이 가능한 ‘직장인에게 기대되는 역할’ 사이에서 특히 여자들은 시간과 에너지 배분의 한계에 봉착한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경쟁은 더 치열해지며, 상사의 입장에서는 많은 부하 직원 중 누군가를 선택해야만 한다. 같은 근무시간 동안 똑같은 능력으로 똑같이 열심히 일한다 해도, 퇴근 시간만 되면 집으로 가는(혹은 육아 등의 이유로 가야만 하는) 사람과 퇴근 시간 이후에 자기계발도 하고 타 부서, 거래처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하는 사람 중 누구에게 더 호감이 갈 것이며, 또 실제로 누가 더 폭넓은 업무수행이 가능하고 누가 더 좋은 업무성과를 낼 것인가는 자명한 일이다. 같은 조건에서라면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는 사람이 더 선호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친한 후배(여자는 물론 남자들도)가 이러한 고민과 애로를 토로해 오면 늘 해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들(부모, 배우자, 친구 등)이 기대하는 역할이 무엇인가에 답하려 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라고. 20~30년 후 50~60세가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이고 싶은가를 생각하면서 일과 가정의 비중을 잡아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라고 말이다.

직장에서의 성공만큼 ‘단란한 가정 이루기’ 또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훌륭한 직장인도 되고 싶고, 좋은 부모, 좋은 배우자, 좋은 자녀도 되고 싶은 욕심에 이도 저도 다 제대로 못해 쩔쩔매고, 둘 다 제대로 못해내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화내고, 짜증내지 말자.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에 너무 많은 미련을 두지 말고, 어느 쪽이건 내가 선택한 것에 몰두하고 만족하자.

일과 가정 사이에서 선택권을 더 마음껏 행사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여자들이 더 많아질 때 여자가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에 대한 사회의 수용성도 더 높아지고 더 많은 선택의 가능성이 열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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