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이야기 도중 날카롭게 대치하는 단골 주제는 바로 ‘교육’이다. 집에 들어오면 아이들 문제로 날마다 울상과 푸념을 일삼으니 듣기 싫기도 하겠지만 ‘나 어렸을 적에는…’으로 나오는 남편의 대거리도 만만찮기는 매일반이다.

공부를 ‘좀 했던’ 남편과 나는 공부는 중간 어름에서 헤매면서도 놀 궁리만 하는데 장한(?) 아들의 행동이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다. 아니 놀 궁리라도 열심히 하면 모르겠는데 그저 10분에 할 일을 한 시간씩 붙잡고 하루 종일 빈둥거리면서 엄마 속을 까맣게 태운다. 누구네 집 아이는 벌써 진도가 어디고 우리 애는 중간도 못하니 보통 큰 일이 아니라고 한숨을 쉬면서 책상머리에 마주 앉아 찌푸리고 있는 모자를 보면 남편은 한마디 한다. “아무튼 집단 히스테리라니까….”

강남 학원가를 진두지휘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잘 사는 전업주부 집단이다. 젊은 시절엔 좋은 교육을 받았으나 사회적으로 자기를 실현하지 못하고 산다. 그들 대부분은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포기하는 세대였지만 세상이 바뀌면서 갑자기 ‘집에서 노는’ 아줌마로 전락하게 된 운명이다. 아줌마들의 자기 비하와 사회적으로 은근히 따돌려지는 풍자가 난무한다. 돈 버는 부인은 황금오리, 집에 있는 부인은 탐관오리라는 오리 시리즈에서부터 조폭과 아줌마의 유사점 시리즈까지…. 그렇다고 젊은이의 대량 실업이 문제인 이 나라에서 전업주부에게까지 줄 일자리가 남아있는 건 아니다.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유교적 관념으로 키워진 귀하신 대한민국 아드님들을 남편으로 모시고 간간이 경제활동 인구에 들어가 있는 동서나 형님의 빈자리까지 메우며 사람노릇 하느라 허리가 휘어도 전업주부는 그저 남들에겐 ‘돈 안 벌고 노는’ 사람일 뿐이다. 

이런 인식 속에서 엄마들은 막다른 골목에 있는 느낌을 받는다. 어디에서고 자신의 의미를 찾기 어려워진다. 삶이 점점 공허해진다. “그래, 온 국민이 인정하는 ‘자식 훌륭하게 키우는 엄마 노릇’이나 잘 해보자.” 아이들을 보며 새삼스레 전의에 불탄다. 스케줄을 빡빡이 짜고 정보 수집은 물론 밤낮없이 다그치는 가정교사가 되고 학원 운전사가 된다. 사정이 이쯤 되면 밖에 나가 돈 버는 엄마도 몰리게 된다. 몇 푼 번다고 애 망치냐는 소리 들을까봐 없는 시간 쪼개가며 아이들 교육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온 엄마들이 집단적으로 교육 히스테리에 시달린다. 아빠들은 책임전가하기에만 바쁘고 엄마들은 비난을 면하려 전전긍긍이다.

하지만 사실 엄마라는 이름은 이 시대가 가치를 두는 전문성, 주도면밀함, 행동력 등과는 애초에 거리가 멀다. 엄마는 은근하고, 여유로 포용하고, 기다려주고, 무조건 믿어주는 빈 의자 같은 푸근함에 그 미덕이 있다는데, 돌아보니 나는 직장여성보다 더한 빡빡함으로 아이를 몰고 있지 않은가. 아이를 통해서라도 자기실현을 해보이려는 이 시대 아웃사이더들의 반란인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내가 실현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내 인생의 친구이며 우리가 보듬어야 할 작은 생명이다. 그런데도 자꾸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아이야, 미안하다. 엄마가 병이 자꾸 도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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