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40대 여성들의 ‘행복한 리더’론

행복은 영원한 화두다. 여성신문은 행복의 본질과 가치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기 위해 방담의 공간을 마련한다.

그 네 번째는 40대 여성 리더들의 행복론이다.

일시와 장소 : 2006년 6월 27일(화) 저녁 7시~9시 30분 여성신문사 회의실

진  행 : 이은경 편집국장

방담자 : 권미혁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 이선화 보좌관(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실)/ 정미경 여성가족부 검사

이은경:행복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눠보자.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나.

정미경:최근에 여유가 생겨서 행복하다. 그동안 너무 바빠서 행복이 내 옆을 지나가도 느끼지 못했다. 남성이 다수인 조직 안에서 남녀 간 구별이 스트레스가 될 때가 있다. 의견 대립이 있을 때 그 본질은 없어지고 ‘여자가 어떻게 저렇게 말하나’라는 식으로 여성에 대한 선입관이 나타난다. 여성가족부에 와서 여성학 공부를 하게 되었다. 여성학을 접하면서 내 경험을 설명하고, 해석할 수 있게 되어 행복하다.

권미혁: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인가를 떠올리니까, 당황스러웠다. 뭘 얘기해야할지 모르겠다. 내 성격이 낙천적이라고 생각했는데,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가를 생각해보니까 금방 안 떠올랐다. 혹시 내가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 낙천적으로 사는 편이다. 뒷얘기, 지나간 얘기는 잊어버린다. 과거에 매이지 않는다. 결혼할 때 행복했던 느낌은 너무 오래된 이야기다. 요즘은 자연을 접하고, 산을 다니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다. 

이선화:대학에서 총여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여성운동을 했는데, 어떻게 보면 지식적으로 접한 것 같다. 인생을 돌아보면, 결혼했을 때보다 아이를 낳았을 때가 더 행복했다. 아이를 낳고 ‘내 아이가 행복한 세상을 남겨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20년 정도 여성단체에서 일하다가 국회에 왔는데, 의원의 입을 통해서 정책이 실현되는 것을 보면서 행복이 채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양윤선:행복이란 마음속에 분노, 우울, 불안이 없고 무엇인가에 대한 열정과 의욕이 솟아나는 상태가 아닐까. 사람, 돈, 의무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행복하다. 순간순간 행복하다고 느낀다. 내 아이들이 내 품에 안겨와 강아지처럼 킁킁대면서 좋아할 때 행복을 느낀다. 사업상 어려운 난관이 해결되는 순간 역시 행복하다. 그리고 아름답거나 낯선 곳을 여행할 때, 친한 친구와 시장을 볼 때 등이 모두 행복한 순간들이다.

이은경:남편이나 애인이 행복을 주는 데 어떤 존재일까.

정미경:남편이 5살 연하다. 캠퍼스 후배였고, 사법연수원에서 만나 결혼을 했다. 밤 11시에 둘이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밤 12시 무렵 집에 들어오는데 행복하다. 남편은 남성적 권위의식이 없기 때문에 부닥쳐 본 적이 없다.

이은경:남편은 내가 쓴 기사에서 논리를 차용해 그것을 내게 들이대곤 해 종종 당혹스럽다.(웃음)

권미혁:89년에 결혼했으니까, 17년쯤 되었다. 결혼보다는 아기를 낳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다. 친정아버지가 오히려 결혼하지 말고 사회활동을 계속하길 바랐다. 남편이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해봤다. 한번은 남편과 얘기에 몰두하다 출근시간에 둘 다 지각을 했다. 남편이란 친구이자 삶을 의지할 수 있는 동반자다. 남편은 행복에 있어서 중요한 조건이다.

이선화:노동운동을 하다가 남편을 만났다. 막연히 결혼을 위한 조건은 ‘내가 계속 운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였다. 시댁 식구들이 민가협 활동을 하는 분위기였다. 시어머니는 오히려 내가 운동을 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정미경:내 경우엔 시댁 스트레스가 100% 없다. 시아버지는 농부였는데 총명하고 지혜로운 분이었다. 아들이 전화를 안 하면 “종업(남편 이름)이가 집 전화번호를 잊어버린 것 같다. 네가 집 전화번호를 알려주라”며 완곡 화법을 사용했다. 인간에 대한 마음을 읽고 그 배려를 하셨던 분이다. 그리고 자식들한테는 자신감을 물려주셨다.

이은경:시댁과의 관계에 있어서 엄밀한 여성주의적 잣대로 재단하고 민감하게 반응한 적도 있다. 그래서 인간적인 면들을 놓치기도 한다.  

 

이선화:시댁 식구와 적응하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내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서 배려를 받아들이기도 하고, 시니컬하게 꽂히기도 한다.   

이은경:행복의 가치를 어디에 두는가. 

권미혁: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게 바로 ‘행복’이다. 의외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일을 하지만 금전, 명예 등이 모자라거나, 아니면 정말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은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을 주변에서 많이 봤다. 내년에 50살이 되는데, 지금까지 나는 운동하는 사람으로서 ‘당위’를 중시하고 살았다. 그러나 요즘 ‘나’에 대해서 깨달은 것은 예술적인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선화:나의 경우 돈이나 명예 그런 것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 젊었을 때 권위나 명예욕을 추구했던 남성들은 70~80대가 되면 뒷방 신세가 된다. 왜 그런가. 함께 배려하고 나눴던 사람들은 직장이나 돈을 잃거나 나이를 먹어도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한다. 그렇지만 권위나 명예를 추구했던 남성들은 그것을 잃으면 외톨이가 된다. 불행한 일이다.

이은경:요즘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고 고위직 여성도 늘어간다. 일하는 여성들도 은퇴할 때 외로운 여성, 뒷방 신세를 지는 여성이 나올 수 있다.

정미경:일단 내 일에 만족하고, 힘을 빼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몸이 가벼워지고 행복해진다. 내 무게를 줄이면 줄일수록, 결국 내 짐을 내려놓아야 타인의 짐을 들 수 있다. 

이은경:이제 행복을 나누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양윤선:사람 만큼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존재는 없는 것 같다. 가족, 친구, 선후배, 동료든 당연히 그들과 함께 행복을 나눠야 한다.

권미혁:우리 사회가 ‘행복한가’를 생각해본다. 우리 사회는 행복하지 않고 굉장히 각박하다. 이제는 자선도 ‘과제’로 주어진다. 사회 전체가 편안하고 느린 사회가 아니다. 보답을 안 바라고 마음을 움직였으면 한다.

이선화:축구선수들은 경기 전에 인터뷰를 하면 “우리 팀을 위해서 열심히 싸우겠다”는 말을 한다. 축구선수들은 공격수, 수비수 등 역할 분담을 통한 팀플레이를 잘한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다.

이은경:일 중독인 리더와 성취를 이룬 리더는 많이 봤지만 그 이면엔 개인의 희생이 크다. 행복한 리더가 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까. 

권미혁: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과 같은 지도자가 떠오른다. 나와 똑같은 사람인데 우리를 대행해 지도를 하는 지도자가 행복한 지도자가 아닐까. 

 

이선화:지도자라는 개념이 수직적 구도에서 여왕개미처럼 군중을 휘젓는 게 아니라 수평적 관계에서 방향을 제시해주는 사람이 아닐까.

정미경:리더의 역할 역시 다르다. 공무원 조직을 예로 들면 현실에선 리더가 결정하면 그대로 갈 수밖에 없다. 훌륭한 리더, 혹은 행복한 리더는 방향을 알아서,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권미혁:행복한 리더라고 하니까, 이효재 선생님이 떠오른다. 그분의 경우 리더 마인드가 없다. 리더 마인드가 있는 사람은 자신은 너무 행복해하는데 실제로 주변 사람들은 행복해하지 않는다.

이은경:행복의 노하우를 소개해 달라.

이선화:지난해 국감 때 공공기관 여성 비정규직 실태 조사를 했다. 그분들의 행복이 너무 소박했다. 용역으로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들의 희망 급여가 80만 원이었다. 당시 조금 놀랐다. 행복은 돈에 연연하지 않고, 좀 더 다른것에 가치를 두는 것이 아닐까.  

권미혁:요즘 터득한 것은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실수를 했거나 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등은 두려움에서 오는 것이다. 두려움이 없는 날이 행복한 날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사랑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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