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칼럼은 여성신문이 제정한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 지도자상’(미지상) 수상자들의 기고문이다. 이번 순서는 지난 2004년 12월 20일 한국 여성 최초로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에 성공한 오은선 산악인이다.

나에게는 조카가 여동생 내외의 초등학교 4학년 김선영과 3학년 김연경, 그리고 남동생 내외의 이제 세상 빛을 보기 시작한 지 5개월 남짓 된 오윤이까지 셋이 있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등반하기에 바쁜 나는 조카들과 어울릴 시간이 많지 않아서 평일 저녁에 어쩌다 저녁을 같이 하곤 한다.

그날도 부모님과 여동생(오혜선), 조카 둘 그리고 나 이렇게 여섯이서 유난히 맛있는 보리밥에 갖가지 야채를 넣고 된장에 비벼서 삼겹살까지 곁들여 배불리 먹고 우리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부모님은 따로 오시고, 나는 동생이 운전하는 차의 옆 좌석에 앉았고, 선영이와 연경이는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기분 좋게 저녁을 먹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며 오는데 느닷없이 작은 애 연경이가 내 말투를 “으이그, 어떻게 그렇게 되냐”며 손짓까지 섞어서 그대로 흉내 내는 게 아닌가! 순간 내 얼굴이 확 달아오르며 부끄러웠다. 그래서 얼른 “연경아! 이모가 그렇게 퉁명스럽게 이야기했었니? 앞으로도 이모가 그런 말투로 이야기하면 지금처럼 바로 알려줘. 이모가 가끔 이모도 모르게 그렇게 말을 하는 때가 있거든. 고치려고 노력 중이야. 고마워 연경아!” 라고 먼저 시인하면서 나의 못된 말투를 일깨워준 조카에게 창피하지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했다.

오는 차 안에서 내내 언제부터 나의 말투가 이렇게 거칠어지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대학교 신입생일 때만 해도 같은 학과의 남자 선배들이 “은선이처럼 말하라”며 내가 참하고 말을 예쁘게 잘 한다며 칭찬이 자자하던 때가 있었는데.

굳이 핑계를 대자면 생(生)과 사(死)의 경계선에서 움직여야 하는 히말라야 고산 등반의 특성상 뭐든지 간단명료해야 하며 일사 분란해야 하고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철두철미해야 하는 곳에서의 활동을 오래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의사표현이 날카롭고 거칠어지게 된 듯하다. 그렇다고 고산 등반을 오래하면 다 나처럼 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어른들은 대체로 속으로 욕하며 조금 불편해 하거나 나에 대한 애정이 좀 더 있다면 좋게 충고를 해주는데 어린 조카는 여과 없이 곧이곧대로 표현을 해 주니 나에게 전해오는 충격이 더 큰 것이었다.

평소 나는 어린이들의 맑음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그리고 배움에 있어서는 반드시 경험이 많고 학식이 높고 견문이 넓은 분에게서만 배울 것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주위의 크고 작은 또는 사소한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배우게 되는가? 위대한 자연 앞에서 보잘 것 없이 초라한 나 자신을 보며 나를 낮추고 소박하게 살 것을 배우지만 무겁게 지고 올라가야 하는 내 등의 짐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운다.

짐의 무게가 주는 고통을 감당해 내는 만큼 성숙해지는 나 자신을 보게 되고 삶의 어려움도 극복할 힘을 얻게 된다. 또 그 짐이 내 삶의 업이려니 생각하며 인내하는 지혜를 배운다. 나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으면서도 내 짐을 덜어주는 후배를 통해서 뜨거운 동료애를 느끼며 사랑을 배운다. 짐이 한쪽으로 쏠렸을 때 너무 무거우면 내가 통제할 수 없게 되어 짐이 가는 방향으로 쓰러지고 만다. 짐 때문에 쓰러지지 않게 무게중심을 잘 잡고 한 발 한 발 정성스럽게 옮겨야 하듯 인생의 무게중심을 잘 잡아 삶의 고개를 하나하나 넘어가는 지혜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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