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40 남성들의 ‘행복한 리더’론

행복은 영원한 화두다. 여성신문은 행복의 본질과 가치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기 위해 방담의 공간을 마련한다.

그 세 번째는 3040 남성 리더들의 행복론이다.

일시와 장소

2006년 6월 22일(목) 저녁 7시 - 9시 30분 여성신문사 회의실

진  행 김운호 경희대 NGO대학원 교수(대외협력처장) 

방담자 김민영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 박갑주 변호사 / 이상엽 우림건설 홍보실장 / 정봉협 여성가족부 정책본부장 / 최은석 (주)사람과지구어머니 대표 / 홍혜걸 중앙일보 의학전문 객원기자

김운호:자신이 언제 행복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이상엽:장애인단체 활동가인 네 살 연상의 아내와 결혼했다. 아침에 직장에 출근하면서 아내와 키스를 하면서 짤막한 행복을 느낀다. 아내와 일상적인 이벤트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행복은 노력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박갑주:인생에서 농도가 짙었던 순간들이 행복했던 것 같다. 80년대 운동을 하면서 치열하게 살았던 시기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진보정당 운동을 하다가 고시에 붙고 사법연수원에 다니던 시절 ‘정당명부제’를 마련해 정당 정책으로 내놓았다. 그때 사회적으로 행복했다.

김민영:시민운동을 하면서 경제적 여건이 안 좋아 애를 학원에 보낼 처지가 안 된다. 얼마 전 처음으로 아들과 함께 하루 반나절 수학경시대회 준비를 위해 수학문제와 씨름했다. 의외로 아들 수학 성적이 좋게 나왔다. 아버지로서 어깨를 폈고 가족이 모두 행복했다.

홍혜걸: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을 때는 아내를 만나서 데이트하고 결혼하는 과정이었다. 데이트 시절 직장을 퇴근하면서부터 시작한 아내와의 전화통화는 별이 지고, 다음날 해가 뜨면서까지 계속했다. 그때 참 행복했다.

최은석:사업을 시작한 지는 4년 되었다. 39세까지 백수로 살았다. 30대 중반까지 사회운동을 한다고 했다. ‘내가 역사에 무슨 기여를 했느냐’가 조금 지나고 나니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순간순간 내가 얼마나 행복했느냐가 중요해졌다. 지금,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조금씩 돌려줄 정도는 가능해서 행복하다.

정봉협:사람은 행복하다는 것을 평소엔 못 느낀다. 그러다가 남의 불행을 보면서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또 ‘절대 행복’이라는 것도 없다. 퇴근해서 집사람과 저녁 먹은 뒤 손잡고 산보할 때 가장 행복하다. 일상의 행복은 ‘관계’ 속에서 느낀다. 예를 들어 자식 성적이 오르고, 아내하고 관계가 좋아지면 행복하다.

최은석:행복의 획일적인 기준은 없다. 사람들과 사랑과 행복을 나누는 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태도와 지향’의 문제다.

김운호:보통 40대는 인생에서 안정화 단계라고 하는데, NGO 대학원생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그렇지도 않다. 어떤 40대 여성 활동가는 결혼생활이 지루하다고 솔직히 얘기한다. 

홍혜걸:아내를 사랑한다. 하지만 만약 또 하나의 나를 복제할 수 있다면 ‘탐미주의적’으로 사는 것도 행복할 것 같다. 

박갑주:인간을 존재형과 당위형으로 분류해봤을 때 나는 당위형에 속한다. 일부일처제의 문제를 놓아버리면 행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특정한 목표와 일치하거나 그 속에 서 구속될 때 행복을 느낀다. 

이상엽:아내의 삶을 존중해 주고 아내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존중해 주는 것, 즉 부부로서 일정 정도 구속이 존재하지만 각자의 삶의 가치를 부여해 주는 노력을 하는 게 행복한 삶이 아닌가 싶다.

정봉협:어느 나라가 행복하냐를 조사했을 때 네팔, 인도 사람들이 높은 순위에 나온다. 누가 더 행복한지 즉, 행복의 크기를 비교할 순 없다.

    

홍혜걸:누릴 것을 누린 사람이 행복하다. 하지만 네팔 사람들이 행복한 것은 제한적 의미의 행복이다. 누려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봉협:하지만 소득 1만 달러 이상 국가의 사람들은 사고, 갈등, 지도자의 무능력 등 사회적 사건들이 행·불행의 기준이 된다. 

김운호:불행은 또 언제 느끼는가. 무엇이 불행인가.

 

홍혜걸:정신의학적으로 봤을 때  ‘공허감’은 약으로 치료가 안 된다. 돈이 많고 사회적으로 성공했더라도 자신이 열정적으로 좋아했던 대상이 사라지면 그때 오는 공허감은 불행이며, 치유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박갑주:게다가 불행은 한꺼번에 몰려온다. 95년에 사회적인 활동을 그만두었다. 당시 우리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는데, 민주노동당이 잘 안 되었고, 사랑하는 여자와도 헤어졌다. 그 당시엔 대체재로도 해결이 안 되었다. 시간이 가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이해가 된다. 그때야 비로소 불행이 극복되었다고 느낀다.

정봉협:일상을 살아갈 때 주어지는 스트레스 역시 나한테는 불행이다. 행복하다고 느끼느냐, 불행하다고 느끼느냐는 결국 선택의 문제다. 아내가 늦게 들어오고, 아이들 성적이 떨어지고, 주변에서 부탁은 하는데, 들어줄 수는 없고….

이상엽:단절되는 상황에서 불행을 느낀다. 10년 가까이 사귀던 여자 친구와 헤어졌을 때, 22세 때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등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사람과 단절되었을 때 불행을 느낀다.

김운호:나 역시 한동안 직장에 나가기는 했는데 어떤 일도 주어지지 않은 상황이 있었다.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고, 할 일이 없었는데 그때 정말 불행했다. 다시 일하게 되었을 때 행복감과 충만감이 넘쳤다. 

이상엽:일상에서는 ‘노동’의 유무도 행·불행의 느낌을 주는 것 같다. 봉급을 얼마를 받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홍혜걸:일자리는 있는데 자아실현을 못하는 것도 문제다. 

 

김운호:행복의 최고 가치는 무엇인가. 그리고 남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나.

홍혜걸:대화와 스킨십이 굉장히 중요하다. 쾌락은 긴장형 쾌락(복권 당첨, 오르가슴 등)과 이완형 쾌락이 있다. 누군가가 만져주면 잠드는 것은 이완형 쾌락이다. 이완형 쾌락이 만들어지는 대화와 스킨십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가족이라는 틀보다 그 외연을 더 넓혔을 때 사회를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정봉협:행복이라는 게 혼자 행복하면, 행복의 크기가 작아진다. 그래서 함께 도모하려고 한다.

김민영:시민운동의 궁극적 목표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내세운 ‘행복해지길 두려워 말라’는 선전 구호 역시 사회적으로 행복한 기제를 만드는 것이다. 주거, 교육, 노후 대책 등의 문제가 사회 정책적으로 충분히 실현되면, 사회적으로 불행이 덜 양산될 것이다. 정치 역시 대중의 행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박갑주:스킨십,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소통이 바로 중요한 행복의 계기가 될 것 같다.  

김운호:경영학을 가르쳤을 땐 경쟁력이 있어야 사회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런 나 자신이 조금은 부끄럽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향락적 빈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소시민이 소시민으로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게 필요하다. 

홍혜걸:희귀병에 걸린 사람이 굉장히 불행할 것 같지 않은가. 그 사람들끼리 만든 동호회에 가본 경험이 있는데, 그들은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대기업 총수들에게선 별로 웃는 얼굴을 보지 못했다. 만나는 사람이 없거나 친구가 없어서 불행한 것 아닐까. 실제로 이건희 회장을 뵌 적 있는데,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김운호:가진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주머니를 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난 사소한 것이라도 내가 가진 것을 조건 없이 나누는 것을 연습하곤 한다. 가령 주말에 캠퍼스에 놀러온 시민들에게 사진을 찍어서 메일로 보내준다. 굉장히 즐겁고 행복해 카메라도 새로 장만했다.

이상엽:사람에 대한 배려, 나눔, 관계성 속에서 행복은 나타나고, 그러한 일상성 속에서 행복의 과정이 만들어진다.

홍혜걸:빌 게이츠가 미국 청소년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 것이다. 그것에 익숙해져라”라고. 세상을 살면서 돈, 학벌 등의 한 가지 기준으로 사는 게 아니라 그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

이상엽:사회적인 행복은 상호 배타성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경쟁적 구도 속에서 경쟁을 건강하게 인정하면서 경쟁하면 덜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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