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이를 자연스럽게 기른다는 것

둘째 아이의 학교생활 적응 때문에 애를 먹고 있던 나는 요즘 괜찮은 대안학교를 찾고 있다. 지금의 초등학교 교육 방식이 아이에게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첫째 아이는 또 어떤가? 친구관계 때문에 일찌감치 학교에서 따돌림이라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 아이들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실적인 노력을 하는 것과 함께 엄마인 내가 해야 할 일이 또 있었다.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심적인 노력이 그것이었다. 학교생활이 모범적이지 않아도, 친구관계가 원만하지 않아도 그것을 못난 탓으로 돌리거나, 세상의 ‘정상’ 혹은 ‘모범생’들과 똑같이 행동하라고 닦달하지 않는 것 말이다. 아니, 보다 근본적으로 내 마음 속에서 내 아이들에 대해 서운해하지 않는 것, 그러니까 내 아이들의 인생을 아무런 판단이나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 아이들에 대한 존중감을 잃지 않는 일이었다. 내가 그들에 대해 편견이 없어야 그 아이들도 자신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것이 아닌가. 물론 쉽지 않았다.

마음이 따뜻하고 건강하다면 성적이야 아무래도 좋다던 생각은 아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 끝이 났다. 나 혼자 태연하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자칫 방심하다간 선생님에게 매일 야단맞거나 아이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가 되기 때문이다. 

‘그냥 놔두면 제가 알아서 하겠지’의 단계를 지나서 학교생활에 적응시키기 위한 훈련 단계로 접어들었지만 아이가 자신의 스타일을 바꾸지 않자 분통이 터졌다. 화를 내고, 매를 들어도 결국은 아이보다 내가 먼저 손을 들어버렸다.

이제 아이로부터 초연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까지 왔다. 매일매일 가슴을 쓸어내린다. ‘저 아인 내가 아니야. 어느 별에서 온 영혼인지 몰라도 그냥 내가 잠시 맡아 기르고 있을 뿐이야. 있는 그대로 인정해줘. 있는 그대로 그러하도록 자기답게(自然) 그냥 놔두자고. 그 아이가 자기 인생의 체험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말이야.’

그러니까 나는 요즘 육아 수련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나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위해 마음 수련을 했듯이 아이들을 바라보면서도 수련을 한다. 내 문제보다 아이들 문제가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아이들에겐 아주 현실적인 장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자신을 억압하면서 성공한 어른보다는 자신의 스타일 대로 사는 어른으로 키우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는 아마도 나와 내 아이들 자신이 책임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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