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칼럼은 여성신문이 제정한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 지도자상’(미지상) 수상자들의 기고문이다. 이번 순서는 90년 정대협 발족 때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윤미향 사무총장이다.

“여름이 오는구나. 어이구, 얼마나 더울까?”

벌써 더운 여름을 걱정하는 소리가 우리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몇 년을 이러고 있는가. 이번 여름만 지나면 내년 여름에는 이렇게 서있지 않아도 될 거야. 조금만 힘을 내지 뭐. 그렇게 확신이 서지 않는 승리를 예감하면서 열 다섯 번의 여름을 지냈다. 그리고 우리는 또 한 번의 여름 앞에 서있다.

“백날 이렇게 데모만 하면 뭐해, 저놈들은 꿈쩍도 안 하는데….”

“아녀. 그래도 우리가 안 하면 저놈들이 이겼다고 만세를 부를 거야. 그러니까 계속해야 되는 거야.”

“이렇게 여기만 있지 말고 청와대로 쳐들어가자고.”

전혀 변하지 않는 일본 정부를 보면서 언제까지 이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답답함을 할머니들은 이렇게 풀어내고 있다. 그러나 곧이어 할머니들은 그분들 뒤에 옆에 줄지어 서는 청소년들, 시민들, 때로는 멀리 해외에서 할머니들과 함께 연대하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 얼굴 표정을 고치신다. 자신 있고 희망에 찬 모습으로 사람들의 손을 잡는다. 여러분들이 있어 우리가 힘내서 이렇게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계속 함께 참여하게 하는 동기를 불어넣어 주신다.

“뒤에 서서 집회를 참석하면서 할머니들과 여기 참석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니까 정말 평화 그 자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할머니들은 평화이십니다.”

수요시위에서 매주 수요일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는 어느 수녀님이 하신 말씀이다.

요즘 할머니들을 보면서 그 수녀님이 하신 말씀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15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그 많은 여름과 겨울을 이겨 오셨다는 것, 그것은 이미 할머니들이 이 싸움에서 이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주 수요일 새로운 사람들로 일본대사관 앞이 채워져 가고 있고, 서울에서, 도쿄에서, 대만에서, 워싱턴에서, 호주에서 수요시위에 연대하는 집회가 개최되고 있다. 이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정의를 회복시키라는 요구가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이미 우리에게 평화는 오고 있다는 것, 아니 평화가 왔다는 것을 확신시켜 준다.

국제엠네스티가 오는 8월 9일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의 할머니들과 연대하는 수요일로 정하고 전 세계적으로 집회를 개최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평화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더 확고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초조한 일본정부는 막강한 군사력으로, 자금력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감지되는 곳에는 어디든지 달려가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제를 묻어두기 위해서다.

할머니들과 우리가 함께 해 나가고 있는 이 평화운동은 이런 일본정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간다. 그들에게 야스쿠니 신사가 주는 평화가 아닌 할머니들이 만드는 평화를 깨닫게 하고 결국은 굴복하게 하기 위해 간다. 또한 세계 여기저기서 전쟁으로 상처받고 아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기 위해 우리는 계속 걸어가고 있다.

오솔길조차도 보이지 않던 곳을 할머니들과 우리가 용감하게 걷기 시작하여 지금은 편하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이 함께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 길 위에 전쟁의 아픔을 가진 여성들,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 그들과 함께 손잡고 함께 걷기를 바라면서.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