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5060 남성들의 ‘행복한 리더’론

김효선:이제는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이며, 행복한 리더가 되는 길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 행복방담의 첫 번째 주자로서 화두를 열어달라. 먼저 행복한 경험, 혹은 기억은 어떤 것이 있나.

최병길:행복이라는 말을 듣자 ‘야아, 행복… 내가 언제 썼던 말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행복이라는 말은 젊은 시절에 주로 사용하던 말이었는데, 그 이후 바쁘게 살다 보니 어느새 행복이라는 말을 잊고 산 것 같다.

이인정:대한산악회연맹에서 등산학교를 열면 60명 정도가 온다. 자연 속에서 암벽타기를 배우고 20㎞ 정도 뛰고 나오면, 힘들지만 모두들 즐거워한다. 등산학교처럼 어려움을 같이 경험하고 극복하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선 단돈 1만 원만 가지고 있으면 산에 갈 수 있다. 이처럼 ‘10불의 행복’을 주는 산이 있는 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김철수:집 주변에 있는 청계산, 대봉산을 한 시간 정도 산책하다 보면 저절로 스트레칭이 된다.

김효선:행복은 자연에서 오는가.

최병길: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나를 떠올려봤다. 젊은 시절, 뉴욕 근무 중 영어와 비즈니스 등으로 스트레스가 많았을 때, 저녁에 맥주 한잔을 하면서 쌓인 피로를 풀었다. 그리고 주말엔 미국 곳곳을 여행했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오니까 각박하고 답답하다. 요즘 뉴욕에 있던 친구들이 모이면 ‘그때 뉴욕에서 여행하고, 골프 치고, 맥주 마시고 했던 그런 때가 살아서 또 올까?’는 이야기를 나눈다. 뉴욕 시절 젊었을 때, 그때가 참 행복한 시절이었다. 당시는 못 느꼈다. 지난 뒤에 ‘행복함’이라는 소중한 느낌을 깨달았다. 

김철수:나도 그랬다. 레지던트 끝나고 군대로 가는 공중보건의 근무지를 전북 남원에 배치 받았다. 서울에서 태어난 나로서는 지방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어서 유배당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아침에 새소리가 들리고, 나무도 많고… 그때같이 마음 편한 시절이 또 올까 싶다.

박희열:나는 아내를 만나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고 가족을 이룬 것이 참 행복했다. 나의 든든한 후원자가 생겼다는 느낌, 그리고 나의 울타리가 생겼다는 느낌이 나를 행복하게 이끌었다. 두 아이를 낳았을 때 ‘아버지’가 된다는 느낌도 행복을 주었다. 행복은 ‘유명한 존재’가 되는 게 아니라 ‘기억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사랑을 하면 기억되는 존재가 되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껴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다.

김효선:흔히 성공하면 행복하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이인정:행복은 거창한 게 아니다. 건강하고 편안하고 남에게 밥도 사주고… 그것이 행복이 아닌가? 좋은 차를 타고 회사 사장을 하면 성공이라고 그러는데, 그것은 가식된 포장이다.

박희열:외부적인 것을 기준으로 행복을 판단하는 것은 마치 모델하우스만 보고 집을 선택하는 것과 같다. 시각적으로 진열해 놓은 가구들이 있는 모델하우스는 행복을 금방이라도 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행복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모델하우스만을 보고 집을 샀을 때 실제로 가구를 놓을 곳이 없어서 난처해 하는 사람들을 봤다. 행복은 결국 ‘이미지’와 ‘겉모습’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내용’과 ‘실체’인 것이다.

김효선:돈과 행복은 함께 오는 것인가?

김광웅:국민소득 1만 달러 넘는 나라들을 비교해 보니까, 2만 달러 버는 나라와 3만 달러 버는 나라 사람 사이에 주관적 만족도의 차이가 없었다. 결국 행복은 자기의 기대치와 현실과의 갭이 적을수록 많이 생기는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수목장(樹木葬)도 다음 세대와 함께 행복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이다. 선산을 돌볼 여유도 없는데, 가족들이 함께 묻히는 수목장을 하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기존의 공원묘지들을 수목장터로 바꾸면 좋을 것이다.

김철수:6년 전쯤 신문에서 남한 국민과 북한 국민의 생활만족지수를 비교했는데, 북한이 우리보다 3단계가 높았다. 즉, 경제력과 행복은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김광웅:행복론을 얘기할 때 국가 전체, 집단, 개인 차원이 각각 다르다. 국가 전체의 행복에 대해서 나는 ‘소강국가론’(小康國家, 작지만 평안한 나라)을 강조하고 싶다. 공자는 ‘여유 있고 반듯한 나라’를, 덩샤오핑은 ‘웬만큼 여유 있는 나라’를, 김구 선생은 ‘외침을 막고 문화의 힘이 있는 나라’를 행복한 나라로 생각했다.

김효선:단순히 경제적인 부와 성공이 곧 행복이 아니라는 것에 모두 동의한 것 같다. 그렇다면 사회적 지위는 개인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어떤 조사에 따르면 명예와 권력이 있는 사람이 오래 산다고 하는데.

김광웅:옛날엔 명예와 지위가 같이 갔는데 지금은 아니다. 학력과 지위와 권력이 모두 함께 가는 전통적인 파워엘리트의 성장코스는 이미 깨졌다. 지금은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서 행복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렇게 사는 젊은이들이 이미 많아졌다.

최병길:어떠한 지위가 있다는 것은 분명히 행복에 도움이 된다. 다만 그 지위에 맞게 서로 포용할 수 있는 자질과 인품이 있는 사람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 같다.

박희열:지위가 아무리 높더라도 ‘감사’의 마음이 없으면 불행해진다. 불행과 행복은 백지 한 장 차이인 듯하다.

최병길:지위가 있는 사람은 결국 그 분야에서 노력하는 사람이고, 성취 동기가 뚜렷하다는 얘기다. 즉, 뜻한 바를 이루고, 그런 과정에서 활력소와 생명에너지가 넘치기 때문에 오래 사는 것 아닐까.

김철수:그렇다. 몸이 긴장하면 호르몬이 나온다. 너무 부담 없이 편안하게 사는 것보다 약간의 긴장과 스트레스는 오히려 건강에 도움이 된다.

이인정:높은 산 속에서 죽기 전에 사람은 무지 행복하다. 산에서 얼어죽는 사람을 나중에 발견해 보면 인상 쓰고 죽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것은 자연이 인간에게 마지막 서비스를 하는 것이다. 인간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고, 그래서 인간은 항상 자연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김효선:나 자신이 행복한 것은 그래도 쉬운 일인데,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일을 하는 것, 그리고 행복을 주는 리더가 되는 것은 어렵다.

이인정:우리 회사 직원이 150명 정도 되는데, 경비 아저씨와 식당 아줌마까지 전 직원이 모두 외국에 나가봤다. ‘새로운 외국문화에 대한 체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행복한 리더가 되는 길이다.  

김철수:치과 의사인 나에겐 환자를 치료하고 동시에 병원을 운영하는 입장이지만, 환자와 의사 간 ‘신뢰’가 형성될 때 최선을 다해 치료하고, 그때 행복하다. 신뢰를 주는 리더가 행복을 전해주는 리더가 아닐까.

 

김광웅:대통령이라도 온 국민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 행복은 주관적 측면과 객관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경제적 여건을 비롯해 행복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대통령이 욕을 안 먹을수록 국민은 그만큼 행복한 것이다. 행복한 리더가 되는 길은 물질적 보상보다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취업의 기회, 유학의 기회 등 다양한 기회를 가능한 한 많이 마련해 주는 것이다.

최병길:기업의 경우에는 내외부적으로 경쟁 환경에서,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도태된다. 그런 가운데 행복을 주고, 남을 배려하는 건 쉽지 않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 행복을 주는 리더가 되는 것은 공정한 룰 속에서 공정하게 경쟁하고, 공정한 평가가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 다음으로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들을 조직에서 배려하고 그 사람의 살 길을 고려해 기회를 주는 것이다.

박희열:선진국가들은 삶의 질, 행복지수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고 들었다. 또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사회·환경 발전까지 고려한 GNH, 즉 총국가행복지수를 만들고 있다. 총국가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 사회 지도층들이 더 노력해야 한다. 나의 경우는 직원들에게 책을 읽을 기회, 해외여행을 할 기회 등 다양한 형태의 ‘즐거움’을 제공하려고 한다. 즉 ‘순간의 행복’을 주려고 노력한다. 행복을 주는 리더는 ‘잔정’을 섬세하게 공유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진   행 김효선 여성신문 사장

방담자 김광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김철수 김철수치과 원장

박희열 희경건설 사장

이인정 대한산악회연맹 회장

최병길 한일시멘트 부사장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