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80년, 마릴린 먼로와 새롭게 조우하다

금발에 푸른 눈,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의 마릴린 먼로(1926∼62)는 백치와 요부의 이중적 이미지를 동시에 가진 20세기의 대표적인 섹스 심벌이다. 그 이전과 이후 수많은 섹시 스타가 명멸했지만 그 누구도 그의 위치를 넘보지 못했던 이 세기의 여배우가 올해로 탄생 80주년(6월 1일)을 맞았다. 세월이 흘러도 그에 대한 대중의 숭배에 가까운 열광과 호기심은 그치지 않지만 ‘섹스 심벌’을 넘은 그의 진면목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뒤늦게라도 영화, 책 등을 통해 마릴린 먼로, 그 존재 자체에 대한 진지한 물음과 해석이 시도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아마 이 불쌍한 여성은 요절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운명에 대해 덜 억울해하지 않았을까. 

“키스 한 번에 1000달러, 영혼엔 50센트…난 영혼을 지켰다”

영화평론가 유지나 동국대 교수는 “먼로는 자신의 신체적인 매력을 전략적으로 남성판타지 속에 투사하며 가부장적 할리우드 시스템 속에서 생존을 시도했던 고독한 페미니스트로서의 잠재적 가능성을 지닌 여성”이라고 평한다. ‘여성 성상품화의 표상’이 된 인물이기도 했지만 다른 시대에서 다른 사람들과 작업했더라면 주체적인 그의 연기가 드러났을 수도 있다는 것.

마릴린 사후 발간된, 그가 직접 쓴 유일한 자서전 ‘마릴린 먼로, 마이 스토리’(해냄)에선 그의 삶을 관통하는 ‘자신을 잃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무언가에 대항해야만 했던’ 강한 자아를 엿볼 수 있다.

“할리우드에서 여자의 인품은 머리 모양보다도 중요하지 않다. 할리우드는 키스 한 번에는 1000달러를 지불하지만 영혼은 50센트인 곳이다. 1000달러짜리 제의를 자주 거절했기 때문에 나는 50센트짜리는 지킬 수 있었다.”

먼로는 아동성폭력과 가정폭력을 이겨낸 ‘생존자’였다. 어린 시절 양부모집에 하숙한 남자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당했을 때 교회 부흥회에서 목사에게 그 사실을 용감하게 고발했고 “이게 마지막 기회야!”라고 유혹하던 영화계 거물을 조용히 거절했다.

두 번째 남편인 야구 스타 조 디마지오는 결혼 직후부터 먼로를 구타했고, 1년여 만에 먼로는 남편에게서 도망친다. 페미니스트 작가인 안드레아 드워킨은 “그녀의 생존 본능은 아주 강하고도 잠재적이었다. 어릴 적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가 자신을 학대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디마지오가 자신을 때릴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석한다.

섹스엔 도통 관심 없었던 섹스 심벌… 대중화 전략엔 탁월한 감각

가장 흥미로운 것은 먼로 자신이 시인하듯 자신은 섹스에 관심이 없었지만 섹시한 이미지를 대중의 욕구에 맞춰 상업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전략과 감각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이다.

먼로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바를 일찍이 파악하고 대중에게 보여주어야 할 부분을 직접 선택해 이미지를 만들어 간 ‘똑똑한 섹시 스타’였다. 그는 할리우드 스타 시스템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인물이지만 오히려 “나를 스타로 만든 것은 스튜디오도 영화도 아닌 ‘대중’”이라고 종종 말하곤 했다.

삶과 품위를 위해 싸운 은막의 여신

사망한 해인 1962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자인기상’을 받은 마릴린 먼로. 옆은 배우 록 허드슨. © 예담 제공
▲ 사망한 해인 1962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자인기상’을 받은 마릴린 먼로. 옆은 배우 록 허드슨. © 예담 제공
사생아로 태어나 어린 시절 고아원과 위탁가정을 전전했으며, 그의 생모는 결국 정신병원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는 등의 출생과 성장 과정을 감동적으로 각색하면서 자신에 대한 관심도 높여나갔다.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마릴린 먼로는 ‘백치미의 표상’처럼 이야기되지만 실제 그는 자신이 창조한 이미지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 태어나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배우였고, 자신이 섹스 심벌로 이용되는 메커니즘을 꿰뚫어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에로배우가 아닌 예술가가 되고 싶다. 최음제 같은 영화로 대중에게 팔리는 건 싫다”면서 대본을 읽기 전에는 출연하지 않겠다고 영화사와 싸우기도 했다.

“나는 영화배우로서 섹시한 면만이 너무 부각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인기에 그리 연연하지는 않았다. 이제는 내 다른 재능이 인정받길 바랐다.”

먼로는 ‘액터스 스튜디오’에 들어가 ‘메소드 연기’를 배웠고, 캘리포니아 대학에 등록해 예술과 문학, 정신분석학에 관한 수업을 들었다. 이후 찍은 영화 ‘버스 정류장’에서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하는 연기를 보여주며 자신의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고 호평을 받았으나 팬들은 새로운 모습의 먼로를 외면했다.

대중은 지하철 통풍구 위에서 폭넓은 흰 치마가 바람에 날리는 ‘7년 만의 외출’이나 콧소리로 부자를 유혹하는 노래를 부르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등에 나타난 먼로의 섹시한 이미지에만 집착했다.

“좀 더 늦게 태어났더라면, 여성주의 영화의 기수도 될 수 있었다”

먼로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항변한다.

“사람들은 나를 사람이라기보다 일종의 거울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음란한 생각을 보았다. 그러고는 나더러 음란하다고 하고 자신은 하얀 가면을 써버린다.”

베일을 벗으면 벗을수록 먼로의 참모습은 상당히 페미니스트적이다. 그래서  드워킨은 “마릴린이 좀 더 늦게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우리는 위대한 영화배우 노마 진 먼로를 알았을 것이다. 그녀도 여자 친구들과 여성 팬들을 가지고 여성 작가, 여성 감독, 여성 제작가와 함께 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대에 태어난 마릴린도 자신의 삶과 품위를 위해 싸웠던 경이로운 존재다”라고 아쉬워했다.

마릴린 먼로의 영향…‘먼로 워크’ ‘먼로 룩’
80세의 마릴린 먼로는 어떤 모습일까 - 62년 36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 마릴린 먼로가 지금 살아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노년의 먼로를 상상해 그린 강형구 작가의 유화 ‘마릴린 먼로’.
80세의 마릴린 먼로는 어떤 모습일까

62년 36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 마릴린 먼로가 지금 살아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노년의 먼로를 상상해 그린 강형구 작가의 유화 ‘마릴린 먼로’.

마릴린 먼로는 영화계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다방면에 영향을 끼쳤으며 그의 영화 속 모습에서 차용한 보통명사를 신조어로 만들어내기도 했다.

■ 먼로 효과 Monroe Effect

영화 ‘7년 만의 외출’에선 지하철 환기통에서 올라오는 바람 때문에 먼로의 스커트가 위로 치솟자 황급히 손으로 가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문에 대도시에서 고층빌딩 사이 좁은 길에서 일어나는 난기류 때문에 여성의 스커트가 갑자기 뒤집히는 경우를 ‘먼로 효과’라고 부른다.

■ 먼로 워크 Monroe Walk

영화 ‘나이아가라’에서 타이트하게 달라붙는 스커트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뒤 엉덩이를 흔들며 걷는 섹시한 걸음걸이를 ‘먼로 워크’라고 부른다. 먼로는 이 걸음걸이를 만들어내기 위해 실제로 하이힐의 한쪽 굽을 약간 잘라냈다고 한다.

■ 먼로 룩 Monroe Look

허리를 졸라매고 풍만한 가슴을 강조하는 먼로의 복장에서 유래한 ‘먼로 룩’은 ‘글래머 룩’을 지칭하는 패션용어다.

마릴린 먼로의 후예들

마릴린 먼로는 죽은 이후에도 대중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여성의 성상품화를 부추겼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배우와 가수, 모델 등 수많은 여성 스타들에게 ‘섹시 스타’의 표상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지하철 통풍구 위에서 치마가 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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