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자연스럽게 기른다는 것 ①

일곱 살 남자아이를 둔 젊은 엄마와 얘기를 나눴다. 그 아이는 퍼즐을 맞추거나 세계지도를 보거나 수학을 공부하거나 영어 알파벳을 외는 일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니 대부분은 혼자 놀거나 혹은 자신의 호기심을 채워줄 수 있는 부모와 있기를 원했다. 언젠가는 초등학생용 과학전집을 얻어온 적이 있었는데 하도 엄마를 졸라서 결국 20권이 넘는 책을 하루 만에 다 읽어줘야 했다. 언뜻 듣기에도 그 아이는 지능이 꽤 높고 지적 호기심이 강한 아이 같았다. 자기 자식이 영재이기를 꿈꾸는 여느 엄마들과 달리 그 아이 엄마는 한숨을 쉬며 속내를 털어놨다.

“나는 그 아이와 정말 안 맞는 거 같아요. 좀 아이다웠으면 좋겠어요. 유치원에 가서도 친구들이 다가오면 귀찮아한대요. 고집이 얼마나 센지…. 그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다 보면 제가 너무 지쳐요.”

엄마 뜻대로 자라주지 않는 아이에 대한 원망과 아이에게 분노하고 있다는 죄의식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엄마의 표정은 불안하고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그 엄마에게, 그 아이는 엄마 혼자서 감당하거나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전문적인 검사가 가능한 상담소에 데리고 가서 아이의 교육에 대해 의논해 보라고 권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세상의 많은 엄마들은 꿈에 부풀고 의욕에 가득 차 있기 마련이다. 내 아이 하나만은 잘 키워보리라. 내가 겪었던 부정적인 경험들은 절대 대물림하지 않으리라. 난 잘할 수 있다. 게다가 잡지며, 서적이며 자신들이 말하는 대로만 하면 아이 교육은 반드시 성공할 것처럼 장담들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인간이란 참 복잡한 존재다. 수학공식처럼 단순할 줄 알았던 교육은 툭하면 어긋나 버리기 일쑤다. 일단 아이는 엄마가 원하는 기질이나 성격으로 태어나주지 않는 데다가 또 얼마나 변화무쌍한가.

소심하고 완벽주의적인 엄마들은 한번 어긋나 틀어지기 시작한 아이와의 관계를 어찌할 수 없어 쩔쩔매다가 히스테릭해지기 시작한다. 내 맘같이 자라주지 않는 아이 앞에서 소리 지르고 펄펄 뛰다가 깊은 죄의식에 빠져들곤 하는 것이다.

인간이란 사실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인가. 우리가 한 인간의 발달단계에 대해 예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란 얼마나 하찮았던가? 나 자신의 마음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자식을 내 뜻대로 키울 수 있다고 했을까? 물론 이 글을 쓰는 나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도 애들하고 씨름하다가 문득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 못하는,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그래서 결국은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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