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그의 막내딸과 친해지기

그의 막내딸과 가까워질 계기가 필요했다. 마침 막내딸도 유학을 가고 싶어했는데 아빠가 쉽게 허락하지 않아서 애태우고 있던 중이었다. 그는 딸에게 유학의 목표를 분명히 세우지 않는 한 보내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것은 겉으로의 표현이었고 마음속으로는 자신의 결혼 때문에 막내를 떠나보내는 것이 될까 우려했다.

아빠와 막내 사이에 좀 더 신뢰 있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나는 아는 후배를 통해 전문 상담자를 소개받은 뒤 딸들에게 진로상담부터 받아보라고 권했다. 큰딸과 막내, 두 아이들은 상담을 받고 오더니 아주 좋아했다.

특히 막내의 경우 자신이 유학 가서 하고 싶은 공부(호텔경영학)가 상담을 통해 그 적성이 인정되고, 그 외 자신의 특성도 발견할 수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했다.

또 아빠인 그도 이 상담 결과를 듣고 보면서 딸들의 성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자식들이 선택한 공부에 대한 믿음도 가질 수 있어서 딸들과의 대화가 훨씬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당연히 내게도 고마움이 전해졌다. 비록 그 표현은 크지 않았지만 나도 뿌듯한 마음에 한 발 더 나갔다.

내 비서들 중에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 있어서 그의 딸들과 만나게 했다. 공무가 없는 토요일, 그 아이들이 내 의원회관에 찾아왔다. 몸집만 컸지 막내 티가 역력한 딸의 표정은 처음보다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공부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와 격려를 한 뒤 TGI인가 젊은이들 식당에 가서 점심도 같이 했다. 그렇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관계를 키워갔다.

그러던 중 지방에서 혼자 사시던 그의 어머님이 덜컥 대장암 판정을 받아 인천으로 올라오셨다. 그는 마치 장남인 자신이 오랫동안 혼자 살아 어머니께 늘 염려를 끼쳐 병이 난 것은 아닌지 자책하고 낙망해했다.

나도 지난 추석 명절 때 인사 갔을 때 뵌 그의 어머니가 “남자도 하기 어려운 나랏일 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 그냥 둘이 오순도순 살기만 바란다”며 손수 준비하신 음식을 내주시며 좋아하시던 모습에 감동이 있었던지라 안타까웠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어 회복 중이지만 병원에 계시던 보름간은 정기국회 마지막 회기 중이어서 국회와 병원을 밤낮없이 오가느라 애를 썼다.

내 건강을 걱정하는 젊은 비서들의 염려에 “이것도 다 미래에 대한 투자야”하며 웃었다. 인생에의 도전에 시간 투자 없이, 몸을 던지는 헌신 없이 행복한 내일이 그냥 오지 않는다는 것을 살아오면서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 번 실패한(?) 인생의 재도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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