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여성 과학기술인들의 네트워크

국내 2만5000명 여성 과학기술인들은 자신들의 역량을 결집시키며 활발한 네트워크를 다져가고 있다.

이들이 속한 대표적인 단체로는 16개 단체·13만 여 명의 회원을 둔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회장 이혜숙 이화여대 교수, 이하 여성과총)와 1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회장 이공주 이화여대 교수, 이하 KWSE)를 들 수 있다.

2003년 창립된 여성과총은 여성생명과학기술포럼, 대한가정학회, 한국영양학회, 한국여자의사회 등 명망 있는 단체들을 회원으로 거느리며 매머드급 과학기술단체로 급부상하고 있다.

KWSE는 93년 대덕연구단지의 선임급 이상 여성 연구원들이 주축이 돼 출범했으며, 현재 1100여 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다.

이학 분야에선 대한가정학회(회장 홍형옥 경희대 교수, 회원 수 2056명), 한국영양학회(회장 이상선 한양대 교수, 730명), 대한영양사협회(회장 곽동경 연세대 교수, 5300명), 한국조리과학회(회장 황인경 서울대 교수, 503명) 등 가정학 관련 단체 활동이 눈에 띈다. 이와 함께 2001년 결성된 여성생명과학기술포럼(회장 유영숙 KIST 책임연구원, 890여 명)과 2004년 출범한 한국여성수리과학회(회장 위인숙 고려대 교수, 203명)도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수 여성 과학자 발굴과 학술대회 등의 사업을 펼치며 주목받고 있다.

공학 분야의 대표주자인 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회장 최순자)는 2004년 창립돼 많은 회원을 확보하진 못했지만 산업자원부의 지원으로 이공계 여성기술인력사업(WATCH21)과 정책과제인 ‘여성 공학기술 인력 양성 및 활용촉진방안 연구’, 여성 공학기술인 인프라구축(DB구축) 사업을 벌이고 있다.

또 한국여성정보인협회(회장 김명숙 이화여대 교수, 1030여 명), 한국IT여성기업인협회(회장 박덕희 넷포유 대표이사, 100명), 한국여성건설인협회(회장 김설주 청석엔지니어링 상무, 129명), 한국여성건축가협회(회장 문숙경 예문 대표, 171명), 한국여성원자력전문인협회(회장 홍성운 신일병원 부원장, 180명)도 손꼽히는 단체다.

의·약학 분야 단체는 가장 오랜 역사와 가장 많은 회원을 갖고 있다. 1923년 창립된 대한간호협회(회장 김조자 연세대 교수)의 회원은 8만1572명에 달하며, 70년 출범한 한국간호과학회(회장 김금순 서울대 교수)의 회원 수는 2027명이다. 56년 창립된 한국여자의사회(회장 박귀원 서울대 교수)의 회원 수는 1만2000여 명으로 조사됐다.

이밖에 독립 단체는 아니지만 여성분과로 활동을 벌이는 곳은 대한화학회 여성위원회(위원장 박종옥 경성대 교수, 724명), 한국물리학회 여성위원회(위원장 박영아 명지대 교수, 1183명), 한국통신학회 여성위원회(위원장 권은희 KT 상무, 250여 명), 한국화학공학회 여성위원회(위원장 오명숙 홍익대 교수, 544명), 대한약사회 여약사위원회(이사 송경희, 1만4531명) 등이 대표적이다.

이혜숙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전문가 그룹의 리더십·멘토십 키운다”

“여성 과학기술인 단체는 학술 교류와 리더십 배양을 통해 여성 지도자 배출 그리고 여성의 과학화를 도와 과학기술 중심 사회 구축에 기여하고 있다.”

이혜숙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여성 과학기술인 단체의 중요성에 대해 “전문가 그룹의 네트워크를 제공함으로써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리더십·멘토십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고 설명했다.

여성 과학기술단체 결성 움직임은 90년대부터 시작됐으며, 2000년대 들어 전문 분야별, 지역별, 직종별 단체가 발족되고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회장은 그러나 “현재 이들 단체는 관련 분야 여성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할 뿐만 아니라 소규모 위원회 형태나 단체로 운영됨으로써 사무·행정적 지원이 거의 없고, 재정적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여성 과학기술인 비율이 12%로 선진국의 30%보다 낮은 현실에 대한 사회적 위기감이 결여돼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그는 “단체들이 회원의 자질 향상에 노력할 뿐만 아니라 사회와 연계해 이 분야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고 여성 인적자원을 국제 수준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여건 조성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특히 “학문 분야가 서로 다른 단체라 할지라도 네트워크를 통해 융합학문으로 경쟁력 있는 과제나 분야를 도출할 수 있고, 연구·개발·산업의 연계가 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각 분야 여성 참여율 40%, 나아가 50% 수준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과학자들의 허스토리

별 스펙트럼 이론가 애니 점프 캐논

‘오, 착한 소녀야 키스해줘!(Oh, Be A Fine Girl…Kiss Me!)’

이 말은 별자리 시스템을 쉽게 욀 수 있게 하기 위해 여성 천문학자 애니 점프 캐논(Annie Jump Cannon, 1863∼1941)이 만들었고, 몇 세대 동안이나 천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줬다.

델라웨어의 조선업자이며, 주 상원의원이었던 아버지를 둔 애니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별자리를 배우고 천문학에 대한 관심을 물려받았다. 그는 1880년 웰레슬리대학에 입학해 물리학과 천문학을 배웠다.

이후 10년 정도 고향으로 돌아와 천문학과 관계없이 살았다. 하지만 1894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웰레슬리의 물리 강사가 되는 동시에 래드클리프대학의 ‘특별 학생’이 돼 대학원 공부를 했다. 1896년 그는 과학사가들이 ‘피커링의 여성들’이라 부르는 집단의 일원이 됐다. 즉, 하버드대학 천문대장이며, 세계적 명성을 떨치고 있던 피커링 교수가 데이터를 추출하고 천문학 계산을 하기 위해 고용한 여성들 중 하나가 된 것이다.

하늘에 있는 수십 만 개의 별 하나 하나를 일일이 특수 카메라로 찍고 그를 세밀히 들여다보며 검토한 뒤 같은 종류끼리 묶는 이 일을 해내기 위해 엄청난 저임금에도 달리 취직할 곳이 없던 능력 있는 여성들이 모여들었고 그래서 사람들이 이 집단을 비꼬아서 ‘피커링의 하렘’이라고 불렀다.

방대한 데이터와 그를 분류할 체계적인 이론이 필요한 이 작업이 1886년 시작된 이래 윌리어미나 플레밍이란 여성이 1만 개의 별을 22개 그룹으로 나누는 성과를 올렸다. 그 다음 안토니아 모리가 다른 분류법을 개발했는데 플레밍 것보다 복잡했고 천문물리학적 이론이 가미된 것이었다. 다음으로 이 일을 맡은 애니 점프 캐논은 플레밍과 모리의 분류법을 고루 사용하여 제3의 분류법을 만들었다. 나름의 이론을 근거로 하여 별을 ‘O, B, A, F, G, K, M’으로 나누고, 이를 잘 욀 수 있게 하기 위해 ‘오, 착한 소녀야 키스해줘!(Oh, Be A Fine Girl…Kiss Me!)’와 같은 구절을 만들었던 것이다. 자신이 발견한 300개의 별을 포함해 무려 40만 개의 별을 단 한 사람이 그렇게 분류했다는 것은 대단한 업적이었다.

캐논은 여성 과학자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절에 40여 년간 현장 활동을 하면서 여러 가지 ‘최초’ 기록을 세웠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최초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여성, 미국천문학회 최초로 선출된 여성 위원장 등의 칭호를 받았다. 그는 1931년 국립과학아카데미의 드레이퍼 금메달을 받은 최초의 여성이 됐다.

늘 망원경을 들여다보며 우주 저 먼 곳의 별들만을 바라보던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마음이 괴로울 때면 이 지구 밖 어딘가 아주 먼 곳에,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진우기 / 번역작가,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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