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한나라당 교묘한 논리로 여성후보 공천 배제
중도 포기 탈락 속출…“중앙당 여성위조차 나몰라라” 허탈

“여성을 적극적으로 지역구에 공천하겠다는 말만 무성할 뿐 뚜껑을 열어보면 해당 지역 국회의원들이 자기 편 사람을 공천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 다툼에 여성후보가 설 자리는 없다.”

강남구 삼선 구의원으로 이번 선거에서 구청장직에 도전하는 박춘호(57)씨는 최근 진행되고 있는 공천 심사 과정에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한나라당 서울시당공천심사위원회에 후보 등록을 낸 박씨는 3월 한 달간 면접을 두 번 치르고 한 차례 ARS 여론 조사를 통해 90여 명의 후보 가운데 4명의 최종 후보군에 포함됐다. 심사 결과를 기다리던 박씨는 3월 31일 주민들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강남구의 두 국회의원(이종구, 공성진)이 추천하는 남성 후보 2명만으로 최종 경선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한나라당은 툭하면 여성에 대한 배려로 30% 여성 공천과 20% 가산점이 당헌 당규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여성에 대한 불공평한 처우는 계속되고 있다. 활용하지도 못할 당헌 당규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어떤 의미로 만들었나?”

박씨는 “이종구 의원의 경우, 예비 후보자의 사무실도 아닌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일요일에도 전화기 13대를 설치해 놓고 여성 당원들을 동원해 자신이 밀고 있는 후보를 지지해달라는 사전 선거운동을 했다”며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제대로 된 공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종구 의원은 사전 선거운동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장 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조양민(40)씨도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경기도 지역 기초단체장 선거에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여성은 조씨 외에도 고양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오양순(58) 전 국회의원이 있다.

조씨는 “경기도 지역 기초단체장에 여성 후보를 내야 한다는 것이 당의 방침임에도 공천과정은 이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며 “나는 나이가 어려서 안 되고 오 전 의원은 나이가 많아서 공천을 해줄 수 없다는 이상한 논리로 여성을 공천 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씨는 “인구 70만 명에 이르는 큰 도시인 용인을 어떻게 여성에게 맡기느냐는 말이 오가고 있다”며 “여성에게 공천을 주지 않겠다는 온갖 구실을 만들어 후보자인 나를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씨는 당이 지방선거에서 여성 후보자들을 적극 공천하도록 지지하는 데 앞장서지 않는 여성 의원들에 대한 섭섭함도 토로했다.

“박순자 여성위원장조차 여성 후보 공천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경기도 도의원에 출마하겠다고 나선 여성 12명 가운데 7명이 이미 탈락했다. 박 의원이 여성위원장 선거에 출마했을 때 경기도 지역 여성들은 표를 몰아줬다. 어떻게 여성위원장이 이럴 수 있나?”

조씨의 한숨 섞인 푸념이다.

열린우리당의 후보로 전남 강진군수 출마를 준비하던 국영애(45)씨는 최근 선거에 입후보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선거비용에 대한 부담감도 컸지만 지역구 국회의원과의 갈등이 주된 이유였다.

“지역구 의원이 지지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데, 내가 출마하겠다고 나서니까 이곳저곳에서 견제가 들어왔다. 민주당 선호 지역이기 때문에 서로 힘을 합쳐 선거운동을 해도 승리하기 어려운데 갈등이 많았다. 지역구 선거사무소 개소식 때 그 의원은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

국씨는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중앙당 의원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내린 결론은 “배지는 배지끼리”였다고 했다. 그는 “지방에서 여성 정치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감내해야 할 인내와 고통이 크다”며 “이번 선거에서는 같은 당의 출마자들을 적극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동당 출마자 35.5% 여성 공천
민주노동당은 3월 31일 기준 확정된 5·31 지방선거 전체 후보 524명 가운데 186명(35.5%)이 여성 후보라고 밝혀 거대 여당·야당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여성 후보 중 광역단체장 후보는 없으며 광역비례 17명, 기초단체장 4명, 광역의원 12명, 기초의원 94명, 기초비례 67명이다. 민주노동당은 그동안 여성 의원의 진출을 확대하기 위해 5·31 지방선거 지역구(광역, 기초의원) 후보의 여성 할당을 추진해왔다. 지역구 후보의 여성 할당 30% 이상을 목표로 20% 이상은 여성으로 강제했다.

민주노동당은 현재 모든 공직·당직 후보는 성평등 교육을 받아야 출마할 수 있는 내용의 당규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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