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 뮤지컬 성공 신화 만드는 ‘우먼 파워’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 뮤지컬 ‘이’의 작사가 장유정(30)씨
95년 ‘명성황후’ 이후 10년의 역사를 가진 국내 뮤지컬 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다. 2005년 공연된 뮤지컬은 어린이용 소품을 포함해 1000여 편으로 매출이 1000억 원대를 돌파했다. 이런 뮤지컬 시장의 성공은 대작 위주의 수입 뮤지컬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작은 규모의 뮤지컬이 붐을 이루며 국내 뮤지컬계에도 미국의 오프 브로드웨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뮤지컬 무대가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소규모 창작 뮤지컬의 성공신화를 만들어 가는 젊은 여성 연출가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가장 두각을 보이는 사람은 최근 영화 ‘왕의 남자’ 원작의 뮤지컬 버전인 ‘이’의 작사가 장유정(30)씨. 원래 연출자로 발표됐다가 작사가로 방향을 바꿨다. 장씨는 지난해 소극장 뮤지컬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오! 당신이 잠든 사이’의 작가이자 연출가이다.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알코올 중독자, 반신불수 장애인, 치매 노인 등이 모여 있는 무료 병원을 배경으로 미스터리와 코미디, 로맨스 등의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2학년 때 과제로 만든 뮤지컬 ‘송산야화’가 눈에 띄어 26세 어린 나이에 연출가로 데뷔했다. 4편의 뮤지컬을 직접 쓰고 연출했으며 최근엔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2005년 한국뮤지컬대상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 올랐고 작사와 극본상을 수상한 ‘빨래’의 추민주(31)씨도 지난해 화제가 됐다. ‘빨래’는 달동네를 배경으로 저임금의 20대 직장 여성,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딸을 방에 가두고 사는 할머니 등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희생된 인물들의 아픔을 그려냈다. 추씨는 이전에도 여성 실학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열혈녀자빙허각’ ‘쑥부쟁이’ 등 우리 음악을 도구로 삼은 뮤지컬을 만들어 주목을 받았다.

코믹 공포 뮤지컬이라는 독특한 장르의 ‘리틀 샵 오브 호러스’의 이항나(36)씨는 탤런트로 데뷔해 연극과 영화, TV를 오가며 연기자로 활동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고도를 기다리며’ ‘냉정과 열정 사이’ 등의 연극을 연출했으며 뮤지컬로는 ‘리틀 샵 오브 호러스’가 첫 작품. 독특한 작품 해석과 상상력으로 화제를 모았다.

김진 작가의 유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바람의 나라’의 연출자로 선정된 이지나(42)씨는 ‘헤드윅’과 ‘록키 호러 쇼’ 등 동성애 코드를 포함한 컬트적인 작품과 ‘그리스’같은 로맨스 장르를 오가며 만드는 작품마다 흥행에 성공한 연출가로 유명하다.

국내 최초의 여성 뮤지컬 연출가로 꼽히는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김정숙(44) 대표가 96년 ‘블루 사이공’을 만든 지 10년이 지난 지금, 국내에서 활동 중인 여성 뮤지컬 연출가는 10명 정도다. 장유정씨는 “공연계에도 학연·지연 등 남성 중심의 문화가 있어 여성들의 진입이 쉽지 않지만 일단 눈에 띄면 이슈화되고 성장하는 데에는 여성이라는 게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얘기했다.

뮤지컬 `빨래`
▲ 뮤지컬 ‘빨래’

뮤지컬 음악감독도 여성 ‘두각’

뮤지컬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특히 돋보이는 분야는 음악감독이다. 소규모의 창작 뮤지컬에서 오케스트라를 직접 지휘해야 하는 대규모의 뮤지컬까지 국내에선 남성 음악감독을 찾아보기 힘들다.

뮤지컬에서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된 데는 국내 뮤지컬 음악감독 1호로 불리는 박칼린(39·사진)씨의 공이 크다. 그는 95년 ‘명성황후’를 시작으로 ‘오페라의 유령’ ‘미녀와 야수’ ‘렌트’ ‘노트르담의 꼽추’ ‘아이다’ 등 지난 10여 년간 50여 편의 크고 작은 뮤지컬에서 음악감독을 맡아왔다.

그의 밑에서 일하고 공부한 후배들이 음악감독으로 진출해 여풍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한국인 아버지와 옛 리투아니아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낸 후 미국에서 첼로를 전공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악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구소영(35)씨는 러시아 국립음악원에서 지휘를 공부하고 온 유학파로 창작 뮤지컬 전문 음악감독으로 통한다. 99년 ‘명성황후’의 조감독으로 시작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한여름 밤의 꿈’ ‘카르멘’ ‘달고나’ ‘소나기’ 등 소규모 뮤지컬에서 주로 활동했다.

‘명성황후’의 현 음악감독인 김문정(34)씨는 떠오르는 차세대 주자로 꼽힌다. 4년차에 불과하지만 ‘명성황후’의 제작사인 에이콤인터내셔널 소속 음악감독으로 ‘맘마미아’ ‘지저스 크라이스트’ ‘페임’ 등 대작에 주로 참여했다.

원미솔(28)씨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록키 호러 쇼’ ‘그리스’ ‘킹 앤 아이’ ‘지킬 앤 하이드’ 등 굵직한 작품을 맡아왔다. 서울대 작곡과 3학년 때 가요를 편곡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99년 ‘락 햄릿’의 노래 지도로 뮤지컬계에 입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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